A:사물-기술도 능동적 행위자로 간주
《Q: 과학기술, 환경문제 등 다양한 현상을 ‘행위자-연결망이론’ 혹은 ‘행위자-네트워크이론’으로 분석하는 시도들이 있다고 들었다. 최근엔 외교 전략에도 이 이론을 적용한 논문을 보았다. ‘행위자-연결망이론’이 과학과 정치, 자연과 사회를 이해하는 새로운 이론으로 떠오르는 듯한데, 이 이론의 내용과 역사, 적용 부문 등이 궁금하다.(pbaw****)》
행위자-연결망이론(Actor-Network Theory)은 1980년대 프랑스의 미셸 칼롱과 브뤼노 라투르, 영국의 존 로가 개발한 이론이다. 과학과 기술을 사회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 출발했지만 1990년대에는 더욱 폭넓고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 일반적 사회이론으로 확장돼 여러 학문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엔 사회학은 물론이고 인류학과 문화연구, 지리학, 환경학, 정치학, 경제학 등에까지 적용 범위를 넓히면서 유력한 사회이론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이론은 과학과 기술을 더 크고 강한 연결망 구축의 산물로 본다. 이는 권력 형성에 대한 정치적 분석과 비슷한 성격을 띤다. 정치가가 권력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선 동맹자들을 하나로 결집하려고 노력하듯이, 과학자와 엔지니어도 동일한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단, 여기에서 행위자들은 인간들만이 아니라 다양한 비인간(예: 생물, 기계, 텍스트, 건물 등)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이질적’ 행위자들이며 인간과 비인간의 행위성(agency) 사이에 근본적 구분은 없다고 본다. 모든 행위자는 연결망 구축자가 충족하고 관리해야 할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순종하기보다는 까다롭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전자의 발견이나 선거에서의 승리는 이질적 행위자들의 연결망을 성공적으로 구축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때 연결망 구축자는 가입된 모든 행위자를 대표하고 동원할 수 있는 대변자가 되며, 그럼으로써 미시적 행위자에서 거시적 행위자로 부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오늘날 세계는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문화, 교육 등 모든 것이 인간들의 관계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항상 비인간 사물들을 매개로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이런 매개 역할을 하는 무기와 돈, 상품, 에너지, 교통수단, 인터넷 등 비인간들은 수동적인 객체가 아니라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키며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의 성패를 좌우하는 힘을 지닌 능동적 행위자들이다. 이 점에서 행위자-연결망이론은 세계 전체가 수많은 인간과 비인간의 결합, 즉 ‘이질적 연결망’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과학이 할 일은 있지도 않은 인간들만의 ‘사회’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세계를 구성하는 이질적 연결망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가를 추적하고 분석하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행위자-연결망이론은 인간들만의 연결망을 상정하고 분석하는 기존의 모든 네트워크 이론과 다르다. 이 이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근대적 학문들의 특징이었던 물질 대 정신, 비인간 대 인간, 자연 대 사회, 과학 대 정치의 이분법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의 근본 문제인 미시 대 거시, 개인 대 구조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것이다. 특히 근대세계가 초래한 전 지구적 환경문제에 큰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김환석 국민대 교수·과학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