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
불교와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참으로 얄궂은 것이었다. 1989년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백담사 주지 도후 스님과 함께 경내를 둘러보고 있다. 동아일보 DB
“개인뿐 아니라 불교 전체에 끼친 피해가 막대합니다.”(송월주 총무원장)
“보안사서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이순자 씨)
1997년 말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종 총무원 청사. 불교식 합장으로 정중하게 인사를 나눈 뒤 1시간 남짓 진행된 대화는 10·27법난이 화제에 오르는 순간 어색함과 냉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앞서 불교계에 참혹한 피해를 끼친 1980년 10·27법난을 언급한 바 있다. 나는 당시 ‘구국영웅 전두환 장군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세 차례 거절한 뒤 23일간의 불법 구금 끝에 총무원장에서 물러났다. 당시 보안사령관으로 합동수사본부장을 겸하고 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자신이 지시했다고 밝혔지만, 최고 권력자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법난의 최종 책임자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전 전 대통령은 그해 8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데 이어 1981년 2월 간접선거를 통해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7년간의 철권통치가 이어졌다. 국가원로자문회의 등 여러 방책으로 자신의 손에 권력을 붙들어 매려 했던 권력자는 결국 5공·광주청문회를 거쳐 백담사에서 769일을 보냈다. 나는 1994년 12월 제28대 총무원장으로 복귀했다.
법난 이후 돌고 돌아 이렇게 17년 만에 마주한 것이다. 몇 차례 짧은 조우는 있었지만 제대로 된 대화는 처음이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이런 말들이 떠올랐다. 권력은 무상하다. 역사는 인과(因果)의 수레바퀴다. 한치 앞을 모르는 인간들은 그 역사 앞에서 얼마나 작고 초라한가.
이에 앞서 10월 설악산 신흥사에서 열린 통일대불 점안 법회에서도 잠깐 만났다. 그의 축사는 자신이 물가를 잡고 경제를 살렸는데, 뒷사람이 망쳐놓고 있다는 게 요지였다. 백담사 주지로 인연을 맺은 도후 스님이 신흥사 주지여서 참석한 모양이었다. 도후 스님은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천수심경(千手心經)을 달달 외운다. 추울 때도 108배를 거르는 법이 없었다”며 백담사 생활을 전하기도 했다.
전 전 대통령과의 악연은 제11대 대통령 취임식 때 다른 종교인들과 함께 참석하면서 시작됐다. 그때 나는 이 모습을 지켜보며 “쿠데타로 권력을 빼앗고 5·18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진압했다. 이런 방식으로는 국민들 마음을 살 수 없다. 끝이 좋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급기야 그는 대통령 퇴임 뒤 여론에 밀려 1988년 대국민 사죄와 함께 재산 헌납을 약속하고 백담사행을 발표했다. 그때 절집에서는 “불교를 패가망신시켰는데 왜 하필 사찰이냐”는 반대가 비등했다. 당시 법난진상규명추진위원회 대표였던 나는 “참회하러 가는데 막지 않는 게 좋겠다. 절집서는 흉악한 짐승도, 죄인도 내쫓지 않고 받아들이는데 그런 법이 아니다”라며 만류했다. 지옥중생도 건져야 하는 불가에서 죄과가 많다고 자비심을 버려서는 안 된다.
원래 가톨릭 신자로 세례명이 베드로였던 전 전 대통령은 백담사 생활 뒤 불교 신자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물가 잡고, 경제만은 내가 잘했다는 식의 큰소리보다는 지금보다 훨씬 자신을 낮추는, 끝없는 하심(下心)을 권하고 싶다.
웬만한 스님보다 경전에 밝다고 하니, 이 뜻을 잘 알리라 본다. 모든 인과는 실오라기에서 시작된다.
정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⑧회에서 송월주 스님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달리 독실한 불자였지만 법난의 주모자가 됐던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회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