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잃어가는 사람들, 우리의 자화상이죠”
소설가 한강은 “소설을 쓰려고 그리스어를 배웠는데 외울 게 너무 많아 힘들었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애착이 큰 연유는 이렇다. 작가는 2008년 늦가을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 언어에 대한,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위기가 찾아왔다. 그는 ‘희랍어 시간’의 초고를 쓰며 이 고민을 힘겹게 뚫고나갔다. 이듬해 봄 150여 장의 스케치를 완성했을 때 깊은 수렁을 빠져나온 듯했다. 그 느낌에 힘입어 한동안 손을 놓았던 ‘바람이 분다, 가라’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동리문학상을 받았다.
“‘바람이 분다, 가라’가 격렬한 느낌이었는 데 반해 이번 작품은 한 남자와 한 여자에 대한 조용한 이야기예요. 소멸하는 삶 속에서 서로를 단 한순간 마주보는 사람들을 다뤘죠.”
소설에서 희랍어 강사인 남자는 독일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서 홀로 산다. 그는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병을 가졌다. 그의 수강생 중에는 한 여자가 있다. 듣기는 하지만 어릴 때 병을 앓아 말을 하지 못하는 여자다. 여자는 이혼한 남편에게 아이를 빼앗기고 ‘말’을 찾기 위해 희랍어를 배운다.
‘언어를 찾는다’는 점에서 작품 속 여자와 작가가 오버랩된다고 하자 한강은 ‘푸하하’ 웃었다.
‘결여된 삶’을 살아가는 남녀는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늦은 밤 남자가 희미하게 보이는 여자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지금, 택시를 부르겠어요.” 말을 할 수 없는 여자는 남자에게 다가와 손가락으로 그의 손바닥에 가만히 적는다. ‘첫 버스를 타고 갈게요.’
“작품을 완성하면 작가가 작품 속에서 ‘나가야’ 하는데 그 과정이 이번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이 소설은 아프고 슬픈 얘기지만 저에게는 따뜻했습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