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투자정보 인터넷에 슬쩍… 흘린자는 대박, 믿은자는 쪽박
인터넷이 괴담이나 루머를 유통하는 거대한 파이프라인으로 변질되면서 금융투자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다. 거짓말로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인터넷에서 손쉽게 장난을 치고, 괴담에 솔깃한 개인투자자들은 번번이 당한다. 거짓말로 개인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것은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탐욕이 만든 거짓이 인터넷을 타고 경제를 좀먹고 있다.
○ 상장폐지 사유 67%가 거짓말 때문
코스닥 상장기업인 글로웍스는 2009년 몽골 금광개발 추진으로 증권가의 주목을 받았다. 2009년 4월 말 545원이던 주가는 그해 9월 10일 2330원으로 327%나 급등했다. 하지만 금광개발 추진은 사실과 달랐다. 이 회사 대표는 허위공시로 주가를 띄워 700여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올해 4월 구속됐다. 회사는 결국 6월 상장폐지됐고,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 자원개발 관련 허위정보로 돈을 끌어모아 횡령한 회사만 2007년 이후 15곳에 이르렀고 이 가운데 10곳이 상장 폐지됐다.
11일 동아일보 경제부가 2009년 이후 239개사의 상장폐지 사유를 분석한 결과, 67.4%인 161개사가 감사의견거절 및 경영투명성 문제로 상장폐지됐다. 기업이 제시한 재무제표 등 경영상황이 거짓이라는 이유로 증시에서 퇴출됐다는 얘기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이들 업체는 투자자들에게 계속 거짓말을 하다가 들통 난 셈”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중요한 사안을 투자자들에게 알리는 공시제도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알려야 할 내용을 공시하지 않거나 공시를 번복하는 등 불성실공시법인 수가 되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증권시장에서 불성실공시 건수는 2009년 15건, 지난해 24건, 올 들어서만 이달 8일까지 30건에 이른다. 코스닥시장에서도 불성실공시로 적발된 사례가 지난해 69건에서 올해 99건으로 늘었다.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봤거나 횡령사건이 발생하는 등 회사 가치에 치명적인 내용을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거나, 감쪽같이 속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 손해 보는 것은 정보력이 떨어지는 개미들
6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얼굴 일부가 모자이크 처리된 한 남성이 등산하는 사진이 인터넷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사진에는 ‘중년 남성이 상장회사인 대현의 대표이사’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당시 문 이사장이 차기 대선 후보로 주목받기 시작한 터라 여성의류업체인 대현의 주가는 6월 30일 1200원에서 8월 24일 3860원으로 급등했다. 이후 사진 속 남자가 대현의 대표이사가 아닌 게 밝혀지자 주가는 급락했다. 이미 사진을 유포하고 거짓말을 퍼뜨린 세력은 이익을 챙긴 뒤였다.
이처럼 거짓말의 유통방식도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증권가 주변을 떠도는 미확인 루머들을 모아 만든 ‘정보지’로 거짓 정보를 유통시켰다면, 요즘은 인터넷 포털의 검색어 순위를 높이는 방식으로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 증시에 거짓말이 만연하면서 애꿎은 개인투자자들은 피눈물을 쏟고 있다. 목욕탕을 운영하는 이모 씨(41)는 지난해 2월 발광다이오드(LED) 부품업체인 씨모텍 주식에 투자를 시작했다. 올 1월 유상증자에 참여하며 투자규모는 억대로 늘어났다. 증권방송에서 투자 유망 종목으로 적극 추천한 데다 유상증자를 맡은 증권사의 투자설명서를 읽어봐도 이런 대박 종목이 없었다. 증자로 286억 원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증자 두 달 만에 경영진의 배임, 횡령 의혹으로 거래가 정지됐고 결국 8월에 상장 폐지됐다. 거짓말에 속아 억대의 손실을 본 이 씨는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는 건물주와 계약을 연장하지 못하고 자포자기한 상태다.
씨모텍 유상증자에 참여한 투자자 중 186명은 지난달 13일 증자 주간사회사인 동부증권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맡은 법무법인 한누리 측은 “피해자가 3000명을 넘고 피해금액도 100억 원을 웃돌 것”이라며 “투자설명서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는 등 주간사회사가 주의 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전했다.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해 ‘허위나 불성실 공시’에 대한 처벌 강도를 높여야 하는데도 제도는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3회 이상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면 자동으로 상장 폐지하는 ‘삼진아웃제’는 기업 부담을 줄인다는 이유로 2006년 폐지됐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외이사나 감사가 기업의 부정을 감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미국 영국처럼 경영진의 부정에 강도 높은 사법처리를 하는 등 사후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