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오른쪽)가 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을 방문했다. 비난보다는 힘을 모아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스님의 말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송월주 스님 제공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대통령 후보)
1997년 12월 18일 제15대 대통령선거를 며칠 앞둔 시기,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DJ)가 총무원을 찾았다. 그날 탁자에 있는 신문의 제목을 인용해 이 얘기를 꺼내자 DJ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나중에 “스님, 덕담이나 하시지 왜 그랬어요. 분위기가 무거웠다”고 말했다. 어쨌든 DJ는 “잘 수습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 뒤 돌아갔다. 당시는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의 이른바 ‘DJP 연합’으로 DJ 당선이 점쳐지던 때였다.
그로부터 4개월여 뒤 ‘대통령 DJ’를 만났다. 1998년 4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원법회’가 열렸다. 조계종이 주관하고 불교 종단들이 연합으로 공동 주최했다. 역대 대통령 취임 뒤 불교계가 관례적으로 개최해온 자리였다. 나는 “첫 수평적인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앞으로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는 요지의 인사말을 했다.
DJ와의 첫 만남은 1961년 5·16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여름 그는 전북 도의원을 지낸 이희종 씨와 함께 내가 주지로 있던 금산사를 찾았다. 눈이 유난히 빛나던 젊은 시절의 DJ였다. 그는 “강원 인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는데 세상이 바뀌어서 선서도 못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취임 뒤 만난 자리에서 그때 이 씨랑 금산사에 오지 않았냐고 묻자 DJ는 “스님, 기억력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DJ는 같이 있으면 질문할 것이 없을 정도로 조리 있게 말했다. 숫자에 밝고 박학다식했다. 그러나 “내가 책임지겠다”는 식의 말은 거의 없었다. 명분과 합리적인 근거, 가능성 등 고려하는 게 많았다. 1988년 내가 10·27법난규명대책위원장으로 YS(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DJ를 10여 일 사이 잇달아 만난 적이 있다. YS는 법난의 진상 규명 요청에 “한번 해보자”고 했지만 DJ는 “알았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지금 조계사 경내에 있는 불교중앙박물관 건립 과정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있다. DJ가 대통령 후보 시절 총무원을 방문한 뒤 불교계를 위한 공약을 서류로 전달했다. 공약에는 당내 불교단체인 연등회 이름으로 박물관 건립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DJ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불교와도 멀지 않았다. 한 호텔에서 마주쳐 대화하다 그가 “스님, 실유불성(悉有佛性·모든 중생은 부처가 될 수 있는 품성이 있음)이죠”라고 말해 내가 “유정무정개유불성(有情無情皆有佛性)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응수하기도 했다.
‘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모름지기 발걸음 하나라도 어지럽게 가지 마라)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오늘 내가 걸어가는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DJ가 애송한 서산대사의 시다. 김구 선생도 1948년 남북협상을 위해 38선을 넘으면서 읊었던 시로, 절대 부끄럽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강한 신념이 담겨 있다.
“스님과는 이상스럽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거리가 있다.” DJ가 측근에게 했다는 말이 기억난다. 실제 그랬다. 어쩌면 내가 종단의 위신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데다 DJ만큼 원칙을 중시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정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