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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가 무서워?… 국회 ‘감기약 슈퍼판매’ 사실상 포기

입력 | 2011-11-16 03:00:00


약사들의 압력에 굴복한 것일까. 아니면 국회의원들의 ‘소신’일까.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감기약 슈퍼 판매가 18대 국회에서 이뤄지지 못할 것 같다.

1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1일 열릴 상임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할 법안을 정했다. 당초 이날 전체회의에 감기약, 해열제 등 가정상비약을 슈퍼나 편의점에서 판매하기로 한 약사법 개정안을 상정할 계획이었다.

동아일보는 이날 ‘제303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사일정 안’을 입수했다. 의료법, 건강기능식품법, 국민연금법, 사회서비스공공관리법, 아동복지법 등 전체회의에 상정할 법안 99개가 결정돼 있었다. 그러나 모두 4장짜리 의사일정 문서에는 감기약 슈퍼 판매를 위한 약사법 개정안이 보이지 않았다. 전체회의에 상정조차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타이레놀, 부루펜, 아스피린 등 해열진통제와 화이투벤, 판콜, 하벤 등 감기약, 베아제나 훼스탈 등 소화제를 심야 슈퍼에서 살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약들은 이미 안전이 검증된 약품이라고 거듭 강조해 왔지만, 약사들과 국회의원들은 오남용과 부작용 우려를 제기하며 반대해 왔다.

물론 21일까지는 6일이 남아 있다. 그러나 상정할 법안을 사실상 확정한 지금, 추가로 약사법 개정안을 넣을 확률은 낮아 보인다. 상정할 법안은 여야 의원들의 합의로 정해진다. 남은 6일간 감기약 슈퍼 판매를 위한 약사법 개정안이 리스트에 들어갈 가능성은 낮다.

내년 4월에는 총선이 예정돼 있다. 지금도 감기약 슈퍼 판매를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이 표가 중요한 시점에 약사들이 결사반대하는 법에 손을 댈 리가 없다. 결국 감기약 슈퍼 판매 법안은 폐기되고 19대 국회로 넘어가 다시 입법 과정을 밟아야 할 수도 있다.

9월 국정감사는 감기약 슈퍼 판매 법안을 낸 복지부를 질타하는 자리였다. 대한약사회 회장 출신 원희목 한나라당 의원은 “복지부가 의약품 부작용 통계나 타이레놀의 오남용 사례 등에 대한 분석 없이 소비자 불편 해소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은수 민주당 의원 역시 “이명박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는 약사대회에 참석해 약국 외 판매가 필요 없다고 약속했는데, (생각을 바꾼 걸 보면) ‘민주주의 국가가 맞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국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9월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3.2%가 약국 이외 장소에서 상비약을 판매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답변이 나왔다. 국회의원들은 대다수의 국민과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한편 △약국 이외의 장소에서 약국 유사 명칭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의약외품을 재평가하며 △임상시험 때 참여자에게 서면으로 동의를 받으며 △약품처방조제지원시스템(DUR) 제도를 법제화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은 21일 상정될 예정이다. 이 법안은 모두 국회의원들이 발의했다. 국회의원들이 낸 약사법 관련 법안은 모두 상정하면서 정부가 낸 법안만 제외한 것이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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