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출산율이 1.23명으로 세계 222개국 중 217위에 올랐다. 형편이 어려운 젊은이들은 ‘3포(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 세대’가 되고, 취업에 성공한 여성들은 경력 단절과 육아 부담 때문에 ‘비만(비혼·非婚 혹은 만혼·晩婚) 세대’가 돼 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최근 보고서는 이에 더해 동거와 혼외(婚外)출산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초(超)저출산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일본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우리와 출산율 꼴찌를 다투는 유교 문화권 국가들에 공통된 현상이다.
▷유럽에서도 여성의 학력과 고용률 향상에 따라 비혼과 만혼이 늘었지만 출산율은 격감하지 않았다. 독신 동거 등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남녀의 성역할이 재정립되면서 비(非)혼인 상태의 출산이 자연스럽게 수용됐다. 하지만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동거나 혼외출산을 부도덕한 행위로 보는 전통적 가치관이 여전하다. 출산율이 1.7명을 넘는 유럽 국가들은 혼외출산 비중이 40∼60%에 이르지만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2%가 안 된다.
▷프랑스는 혼외출산 비중이 50%를 넘어서자 2006년 혼외출산을 구별하는 법 규정을 없앴다. 법적 부부든 동거 커플이든 자녀 수에 따라 영유아수당 가족보조금 등을 지급한다. 소득이 없는 미혼모에겐 월 120만 원 정도를 지원한다. 1990년대 1.63명이던 출산율이 최근 1.96명으로 유럽 1위에 오른 배경이다. 한국은 25세 미만의 미혼모에게 매달 양육비 10만 원과 의료비 2만4000원을 지원하는 게 고작이다.
▷2009년 대통령자문 미래기획위원회는 ‘미혼모 등 전통적 결혼제도 이외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해 출산율을 높인다’는 전략을 내놓았지만 편견의 벽은 높다. 출산율을 높이자고 동거와 혼외출산을 장려할 수는 없겠으나 모든 아이는 축복 속에 태어나 사회의 보호 속에 성장해야 한다. 가족 형태가 차별과 불이익의 빌미가 돼선 안 된다. 가족은 ‘운명’이지만 ‘선택’으로도 결정된다. 빈틈없는 혈연관계가 행복한 가족의 전제는 아니다. “오늘 내 아이와 당신 아이가 다퉜는데 우리 아이가 말렸어”라는 대화가 오가는 가정도 늘고 있다. 가족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가족이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