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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ISD폐기는 美의회 권한’ 알면서도 ‘장관 합의서’ 요구

입력 | 2011-11-18 03:00:00


민주당은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폐기·유보 재협상을 즉시 시작하겠다는 한미 양국 장관급 이상의 서면 합의를 받아오라”고 정부, 여당에 요구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후 3개월 내에 ISD 재협상에 나서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역제안이다.

그러나 말이 역제안이지 실제로는 ‘하지 않겠다’는 억지라는 비판이 많다. 이미 한미 FTA를 비준한 미 의회가 다시 비준해준다는 보장 없이는 미 행정부가 ISD 폐기를 단독으로 약속할 수 없는데도 그 약속을 문서로 받아오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도부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 실상은 안 하겠다는 것?


김진표 원내대표는 17일 고위 정책회의에서 “ISD 폐기나 유보, 수정, 제도 개선은 미 의회와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미 양국이 설립하기로 한 ‘서비스투자위원회’의 협의 대상에 ISD를 적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는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의 언급도 소개했다.

이에 앞서 16일 이 대통령의 제안이 나온 뒤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주선 최고위원은 “ISD 조항 폐지는 미 행정부 권한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이 대통령이 제안한) 재협상(약속)은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주장은 모두 사실관계가 맞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ISD 조항에 대한 재협상은 가능하지만 폐지는 미 의회의 비준이 필요한 사항이다. 한국 국회의 비준동의가 끝난 뒤라면 한미 양국이 ISD를 폐기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양국 의회가 다시 비준해야 한다. 한국 국회의 비준 전에 양국이 폐기하기로 합의하더라도 미 의회의 비준을 다시 거쳐야 한다. 다시 말해 민주당이 이해하고 있는 대로 ISD 폐기는 미 의회의 권한이기 때문에 미 행정부 마음대로 폐기를 전제로 한 재협상 약속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진작부터 미 의회가 이미 한미 FTA 협정을 비준한 만큼 ISD 폐기를 포함한 재협상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말을 해왔다. 김 원내대표는 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ISD를 폐기하겠다는 건 FTA를 파기하겠다는 것과 같다”고 했다. 심지어 강경파의 리더 격인 정동영 최고위원은 지난달 13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미국 의회가 한미 FTA를 비준한 만큼 민주당이 요구한 ‘10+2 재재협상 안(案)’ 중 10(재재협상 대상)은 ‘떠난 버스’다. 물 건너갔다”고 말한 바 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민주당이 차라리 한미 FTA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게 낫다”고 비판했다.

○ ‘장관당’의 현주소


민주당은 전체 의원 87명 중 18명이 장관(장관급 포함) 출신이다. 의원 5명 중 1명꼴(20.69%)이어서 ‘장관당’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대통령실 및 국무총리실 비서실장·수석·비서관·행정관(김동철 문학진 문희상 박주선 백원우 유선호 이강래 전병헌 정장선 홍영표·10명), 차관(김학재 박선숙 변재일·3명) 출신까지 합치면 국정을 경험한 의원은 전체 3명 중 1명꼴(35.63%)로 늘어난다.

한나라당은 의원 수는 169명이나 되지만 장관 출신은 8명(김장수 박희태 유정복 이재오 전재희 정병국 진수희 최경환, 4.7%)에 불과하다. 숫자가 아닌 인적 자원의 질로 따진다면 민주당이 훨씬 우위에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의원총회 같은 공식 석상에서 “한미 FTA는 국익이나 국제화 시대란 현실을 고려할 때 불가피하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의원은 강봉균 의원(전 재정경제부 장관)을 제외하곤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손학규 대표는 보건복지부 장관 출신으로 경기지사 시절 ‘FTA 전도사’로 불렸지만 지금은 협상파 의원들의 ‘중재안’ 서명 작업을 중단시키는 등 당내 강경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한미 FTA 협상 초기 통일부 장관 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의장이었지만 요즘엔 연일 “한미 FTA는 한국을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것” “의사당을 둘러쌀 수 있게 국민 4800명이 국회로 와 달라”는 선동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손 대표나 정 최고위원이 FTA를 결사반대하는 것은 오직 민주노동당 등과의 통합 내지는 연대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내년 대선 후보 경선 참여 의사를 밝힌 터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여당이었던 87석의 민주당이 국가 전체의 문제를 정파적 이익 아래 두고 6석의 민노당에 질질 끌려 다니는 태도는 과연 수권 능력과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한 장관 출신 협상파 의원은 “당의 간판 인물들이 이념, 개인적 이익에만 매몰돼 있으니 당 밖의 안철수(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가 뜨는 것”이라며 “당의 노선을 합리적으로 바로잡아야 민주당을 집권 대안 세력으로 여기는 국민도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유진철 미주한인총련 회장 인터뷰 ▼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 손학규 대표 등은 노무현 정부 때 미국에 와서 한인 단체장들을 모아놓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지지를 요청했던 사람들입니다. 미국 민주당 의원들이 반대가 심하니 집중 설득해 달라는 얘기까지 했습니다. 그랬던 사람들이 지금 FTA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으니 재미 한인들 사이에서는 ‘우롱 당했다’는 격한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유진철 미주한인회 총연합회 회장(57·사진)은 16일 “2006∼2007년 FTA 협상 논의 당시 한국 정부로부터 FTA 지지 활동을 벌여달라는 요청을 전화, e메일, 편지 등을 통해 수시로 받았다”며 “미주총련, 재미한인상공인연합회 등이 모두 동원돼 FTA 특별대책위원회까지 만들었는데 그때의 노력이 지금 모두 물거품이 되게 생겼다”고 말했다.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거주하는 유 회장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나를 비롯한 많은 재미 한인이 최근 한국의 FTA 비준동의안 논의 과정에서 보여준 일부 민주당 의원의 태도를 보면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FTA를 지지해 달라고 부탁했던 미국 의원들에게 이제 뭐라고 얘기해야 하느냐”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유 회장은 당시 동남부한인연합회장으로 찰스 랭걸, 짐 클라이번(민주), 찰스 노우드 하원의원(공화) 등을 상대로 FTA 지지를 부탁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에서 한인의 정치력 확대가 중요한 시점에서 (이번 FTA 문제로) 미국 의원들 사이에 재미동포 사회와 협력할 의지가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앞으로 한국 정부로부터 정책 협조 요청이 와도 재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만나는 미국 의원과 기업인 대부분은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둘러싼 한국 내 FTA 논란을 잘 알고 있다”며 “왜 FTA 체결 당시에는 문제가 안 됐던 것이 지금 와서 논란의 초점이 되는지 다들 의아해한다”고 전했다.

그는 “내가 사는 애틀랜타 인근에는 기아차, 현대차뿐만 아니라 100여 개의 자동차 관련 한국 중소기업이 투자하고 있다”며 “이 한국 기업들은 ISD에 따라 미국 정부를 소송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조항이 한국에만 불리하게 적용된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 장관-장관급 출신 민주당 의원들 ::


손학규 대표(보건복지부 장관)
정동영 최고위원(통일부 장관, NSC상임위원장)
정세균 최고위원(산업자원부 장관)
천정배 최고위원(법무부 장관)
김진표 원내대표(경제 교육 부총리)
이용섭 대변인(행정자치부 건설교통부 장관)
강봉균(재정경제부 정보통신부 장관)
김영진(농림부 장관)
김영환(과학기술부 장관)
박상천(법무부 장관)
박지원(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비서실장)
송민순(외교통상부 장관)
신건(국가정보원장)
신낙균(문화관광부 장관)
장병완(기획예산처 장관)
조영택(국무조정실장)
최인기(행정자치부 농림수산부 장관)
홍재형(경제 부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