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ST 치매예방로봇 ‘실벗’ ‘메로’ 맹활약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개발한 치매예방로봇 ‘실벗’이 덴마크 오르후스에 있는 노인복지센터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고 있다. 이곳에서 지난달 31일부터 활동하고 있는 실벗은 노인들의 인지능력과 기억력, 집중력 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게임을 탑재하고 있다. KIST 제공
17일 오전 10시 서울 삼성동 ‘강남구 치매지원센터’에 달걀처럼 생긴 로봇인 ‘실벗’(사진)이 나타났다.
로봇은 8명의 할머니 할아버지 사이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가수 남진의 ‘님과 함께’. 로봇을 보고 있던 노인들은 익숙한 멜로디에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했다. 로봇 뒤에 있는 커다란 평면 TV에는 노래에 맞춰 가사가 나오고 있었다.
○ 내달에 임상시험결과 나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지능로봇사업단에서 만든 로봇 ‘실벗’과 ‘메로’는 특별한 임무를 갖고 태어났다. 노인들의 두뇌훈련을 도와 치매를 예방하는 것이다. 두 로봇은 노인의 두뇌 활동을 촉진할 수 있는 다양한 게임을 탑재하고 있다. 9월 26일 강남구 치매예방센터에 배치된 두 로봇은 하루에 90분씩 매일 30명의 노인과 게임을 한다.
가사가 빠진 부분을 기억한 뒤 찾아내는 ‘뇌 튼튼 노래교실’, 로봇이 명령하는 동작을 기억한 뒤 재현하는 ‘로봇 동작 따라하기’ 등 게임 종류도 다양하다. 바퀴가 달려 이동이 가능한 실벗은 활동적인 게임을 좋아한다.
사람 얼굴과 비슷하게 생긴 메로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주로 이야기를 하거나 계산 문제를 낸다. 노인과 눈을 맞추던 메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한 분씩 앞으로 나오라고 한 뒤 자기소개를 시켰다. 잠시 뒤 평면 TV에는 방금 전에 나왔던 한 할아버지의 사진이 떴다. 메로는 물었다. “이 할아버지는 무슨 띠인가요?” 참가자들의 정보를 퀴즈로 맞히는 ‘지피지기’ 게임이다.
KIST와 삼성서울병원 측은 두 로봇이 배치된 날부터 ‘로봇이 두뇌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 치매에 걸리지 않은 85명의 노인을 세 집단으로 나눈 뒤 한 집단은 로봇 없는 기존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다른 집단은 로봇과 함께 매일 게임을 한다. 나머지 집단은 어떤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이들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장치로 촬영하고 게임 성취도나 인지능력 향상 등 두뇌 활동의 변화를 알아보는 것이다. 강남구 치매지원센터 정은주 팀장은 “로봇의 효과는 12월 말에 정확히 나오겠지만 현재 임상시험에 참가하고 있는 노인들의 호응도가 굉장히 높다”고 말했다. 로봇과 처음 게임을 해봤다는 조백 씨(62)도 “재미있어서 계속 오고 싶다”며 “60대가 되어서 그런지 내 뇌에 대해 알고 싶다”고 말했다.
○ 실벗, 메로 유럽 진출 눈앞
실벗과 메로는 해외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KIST는 지난달 31일과 이달 7일, 핀란드 헬싱키와 덴마크 오르후스의 노인복지센터에 각각 2대씩 총 4대를 보냈다. 나라별로 64명씩 총 128명의 참가자들이 로봇과 게임을 즐기고 있다. 내년 3월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정식 수출은 아니다. 연구단은 12월 말 로봇의 치매예방 효과가 확인되면 수출도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원호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won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