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회에 끊겠다” 67 vs 33 “부모 ID 쓰면 그만”
그 결과 조사대상 가운데 67명은 정부의 방침대로 오후 10시 이후에는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33명은 어떻게든 다른 방법으로 게임을 계속하겠다고 응답했다. ‘다른 방법’은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로 가짜 아이디(ID)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미 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학생 가운데 일부를 포함해 조사대상 학생 중 48명이 부모 명의의 ID를 만들어둔 상태였다.
셧다운제의 정식 명칭은 ‘청소년보호법 개정안’. 기존 청소년보호법에 신설된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게임을 제공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이다.
○ 게임업계, 청소년 보호대책 내놓아야
20일 0시가 지나면서 트위터에는 이를 비판하는 트윗들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셧다운제 시행을 몰랐던 일부 청소년과 어린이들은 ‘서버로부터 응답이 없습니다’ ‘셧다운제 대상입니다’ 등 알림 글과 함께 게임이 종료되자 “셧다운제는 통행금지와 다름없다” “학원 끝나면 밤 11시가 넘는데 이 시간에 게임을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 제도는 시행 전부터 논란이 됐다. 학부모는 “게임 때문에 아이들이 망가진다”고 아우성이었고, 게임업계에서는 “정부가 게임업체를 무슨 마약상 취급하듯 한다”고 하소연했다. 정작 규제 대상인 청소년들은 “부모님 주민번호로 가입하면 게임하는 데 별 관계가 없다”며 제도를 비웃었다.
무엇보다 게임에 대한 이중적인 시선이 도마에 올랐다. 세계적으로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으뜸 ‘한류 콘텐츠’로 꼽히는 것은 게임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행하는 ‘2010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콘텐츠산업 수출액 3조2494억 원 가운데 게임 수출액은 1조8475억 원으로 56.8%에 이른다. ‘소녀시대’나 ‘카라’ 같은 ‘한류 스타’ 아이돌 그룹이 벌어들인 음악 부문 수출액은 936억 원으로 게임 수출액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김태희나 이병헌 같은 스타들이 영화를 찍어봐야 한 해에 겨우 178억 원을 수출할 뿐이다. 게임이야말로 어느새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됐다.
하지만 국내에서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은 마약이나 술, 담배를 대하는 시선에 가깝다. 쉽게 중독되고, 정신건강에 유해하며,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셧다운제가 도입된 뒤 게임업계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5월에 관련 법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게임업계에서는 이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매출이 5%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정도면 “심각한 타격은 아니다”라는 게 게임업계의 분석이다. 대부분의 매출이 밤 12시 이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게임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했지만 이 과정에서 게임업체들이 청소년 보호책을 마련하는 데에는 소홀했다”며 “규제에 더 당당해지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청소년이 게임에 지나치게 빠져드는 걸 막는 장치를 업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셧다운제보다 부모 관심이 더 효과
예를 들어 설문조사 응답자 가운데 이미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로 ID를 만들어놨다는 학생이 절반에 가까웠다. 부모가 아이가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몰래 사용하는 사실을 한 번도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누구라도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주민등록번호 클린센터’(clean.kisa.or.kr)에서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 주민등록번호가 사용된 서비스를 조회할 수 있다. 이것만 조회해도 자녀가 몰래 게임하는 걸 통제하는 게 가능하다.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김민규 교수는 “부모들은 자녀의 공부뿐만 아니라 노는 것에 대해서도 지도해야 한다”며 “아이들이 게임을 한다면 게임을 같이 하면서 문제를 파악해야지, 무조건 게임은 나쁘고 자녀들의 놀이문화에 대해 ‘나는 모른다’라는 태도가 문제”라고 말했다.
송인광 기자 light@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