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칠레외 6곳과 FTA 체결… 관세 철폐로 ‘수출 날개’
우리나라는 올해 세계 최대 시장인 유럽연합(EU)과의 FTA를 발효하는 등 FTA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미진하다. 무역 1조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둔 우리가 ‘무역 강국’으로 확고히 자리 잡기 위해 FTA 확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 FTA 타고 달리는 한국 차
우리나라는 지난해 칠레에 8억8618만 달러어치의 승용차를 수출했다. FTA 체결 전인 2003년의 1억746만 달러에 비하면 무려 633%에 이르는 증가세다. 업체별 판매량에서도 현대·기아자동차는 지난해 5만8673대를 팔아 시장점유율 20.5%로 17.1%의 쉐보레, 12.3%의 닛산을 제치고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런 칠레에서 한국 차가 ‘고속질주’하는 데는 일찌감치 맺은 FTA가 큰 역할을 했다. 역내에 자동차 공장이 없는 칠레는 수입차에 6%의 관세를 물리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FTA로 이 장벽을 무너뜨렸고, 이는 2007년에야 칠레와 FTA를 맺은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를 추월하는 발판이 됐다.
칠레와의 FTA는 수치상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적자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상황이 나쁘지 않다. 올해 적자가 커진 주된 이유는 국내 정유회사들이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아시아의 경유 수요가 늘면서 칠레 수출 물량을 아시아로 돌렸기 때문이다. 자동차(19.3%), 합성수지(49.5%), 화물차(18.4%), 무선전화기(54.2%), 건설 중장비(17.3%), 자동차부품(28.2%) 등 우리 기업의 주력 수출품은 모두 지난해에 비해 두 자릿수의 수출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 관세 철폐로 수출 날개 단 정유업계
우리나라 수출의 10%가량을 담당하고 있는 정유회사들도 FTA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국내 정유4사는 2000년대 들어 중질유를 휘발유, 경유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바꾸는 고도화 설비를 대폭 확충했다. 이를 통해 생산량이 크게 늘어난 경질유는 우리나라와 FTA를 맺은 국가들로 빠르게 팔려나갔다. GS칼텍스는 올해 7월 한-EU FTA가 발효된 이후 전체 항공유 수출물량의 40%가량을 EU 국가에 팔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우리나라와 FTA를 맺은 싱가포르 등 아세안(ASEAN) 시장에서 선전하며 올해 3분기(7∼9월)에만 1882만 배럴의 석유제품을 수출해 상반기 전체 수출물량(1596만 배럴)을 훌쩍 뛰어넘었다. 2조6000억 원을 들여 올해 초 준공한 제2고도화 시설의 가동효과가 나타난 덕분이다. 현대오일뱅크 측은 “일본 코스모 석유와 합작으로 진행하는 BTX공장이 완공돼 파라자일렌, 벤젠 생산량이 현재보다 3배가량 늘면 매년 아시아와 유럽 시장에 1조 원가량을 추가로 수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수출영토 확장의 엔진은 FTA
다만 타결·서명을 마치고 국회 비준을 남겨놓은 한미 FTA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한미 FTA가 발효하면 우리의 FTA 교역 비중은 35.0%로 올라가게 되며, 우리나라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미국, EU 등 대형 경제권과 모두 FTA를 맺는 첫 번째 국가가 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미국 외에 현재 협상 중인 호주, 캐나다, 멕시코 등 7곳과의 FTA가 모두 발효된다면 FTA 교역 비중은 51.6%까지 급증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수출 영토를 확장하려면 개별 국가와의 FTA는 물론 아세안+3(한중일), 아세안+6(한중일, 호주, 뉴질랜드, 인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우리나라가 포함된 거대 경제블록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산티아고=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 [이런 현실]지구촌 313개 FTA로 연결… 추가 체결 경쟁 ▼
세계 각국은 313개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이 가운데 86%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 1995년 이후에 체결됐다. 하루가 다르게 국가간 FTA 체결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FTA 추진 속도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EU) 시장에서 자국의 산업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EU와의 FTA 협상을 위한 예비교섭 시작에 합의했고, 11일에는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참여를 공식 표명했다.
아세안 역시 경제블록 차원에서 한국, 중국, 일본 등과의 FTA를 성공적으로 발효한 데 이어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과 독자적 FTA를 추진하고 있다.
▼ [이런 대안]“역차별 피하기 위해 FTA 확대 서둘러야” ▼
최용민 한국무역협회 실장
최 실장은 칠레 시장을 예로 들며 우리보다 3년 늦게 FTA를 체결했다가 상당 부분의 시장을 잃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FTA 확대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2003년 3.3%이던 일본의 칠레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5.5%로 늘어나는 데 그쳤지만 같은 기간 한국은 3.0%에서 6.4%로 늘었다는 설명이다.
최 실장은 “중국과 대만, 인도와 파키스탄 등 많은 나라가 정치·군사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가면서 FTA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각국의 합종연횡에서 소외된다면 우리가 물어야 하는 관세만 더욱 높아지는 격”이라고 말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 수출 1억 달러 달성한 1964년 11월 30일이 ‘무역의 날’ 시초 ::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한 1964년 11월 30일을 기념해 제정됐다. 처음에는 ‘수출의 날’이었지만 수출과 수입의 균형발전을 이룬다는 취지로 1987년(24회) 무역의 날로 이름을 바꿨다. 무역의 날을 전후해 열리는 기념식에서는 해외 신시장 개척과 경제 발전에 큰 공을 세운 개인, 기업, 단체에 훈·포장과 수출탑 등을 수여한다.
:: ‘무역 1조 달러’는 상품 수출입에 일부 서비스 수출입 더한 것 ::
국가 간에 재화와 서비스 등을 사고파는 거래를 말한다. 무역을 구분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통상 재화의 거래는 상품수지, 용역의 거래는 서비스수지, 자본의 거래는 자본수지로 분류한다. 우리나라의 무역 1조 달러 달성은 전체 상품의 수출입과 일부 서비스 수출입(게임이나 저작권 같은 무체물·無體物 거래)를 더해 산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