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5년간 ‘트로트 틀’ 깨고 떠나
캐리커처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배호기념사업회는 2002년 5월 19일 서울 용산구민회관 대강당에서 가수 배호의 사후 환갑잔치를 열기도 했다. 동아일보DB
서울 청량리의 단칸방에서 어머니와 누이의 간호를 받으며 병석에 누워 있던 그에게 군에서 막 제대한 신예 작곡가 배상태가 ‘돌아가는 삼각지’ 악보를 들고 찾아온 것은 이듬해인 1967년 2월경이었다. 지방 공연을 마치고 제때 서울의 녹음실에 도착했다면 배호의 신화를 만든 이 노래의 주인공은 남일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몸으로 녹음실 부스에 들어선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한 소절씩 테이프에 담았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배호는 비록 5년도 채 되지 않을 짧은 시간이지만 진정한 불멸의 연대기를 기술하기 시작한다.
그의 생애는 격동기의 한국 현대사를 살아낸 거개의 사람들처럼 파란만장했다. 1942년, 평북 철산 출신으로 도쿄대 수의학과를 나온 지식인 아버지 아래 중국 산둥 성 지난 시에서 태어난 배만금(배호의 본명·아명은 신웅)은 광복 난민으로 모국에 돌아와 김구의 도움으로 서울에 정착했지만 그의 유년 시절은 전쟁과 피란, 아버지의 타계와 가난 같은 불행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의 핏속엔 많은 음악인을 배출한 외가의 예술혼이 움트고 있었고 마침내 1956년 중학교를 중도에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와 외삼촌 김광수, 김광빈의 도움으로 미8군에서 드럼을 연주하며 음악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1963년 ‘굿바이’로 데뷔하고 이듬해 외삼촌인 김광빈 악단장이 제공한 ‘두메산골’로 데뷔 음반을 발표하면서부터 한국 트로트의 역사에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깊고 풍부한 노래의 매력을 분만하기 시작했다.
배호는 병상에서 ‘돌아가는 삼각지’의 어마어마한 히트 소식을 들었다. 이 노래는 그와 그의 가족을 굶주림으로부터 탈출시켰지만 어마어마한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선 무리한 일정의 녹음과 공연, 그리고 방송 출연이 불가피했다. 죽음은 이미 그의 곁에 서성거렸고 배호는 자신의 운명에서 도주하지 않았다. 구두에 들어가지 않는 부은 발로 진행자의 등에 업혀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 각혈해 병원으로 이송되는 슬픈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졌지만 그는 ‘무대에서 죽겠다’는 자신의 유일한 좌우명을 마지막까지 지켰다.
백영호와 박춘석, 이봉조 등 당대의 작곡가들이 그에게 노래를 바쳤지만 그의 백조의 노래는 ‘돌아가는 삼각지’와 ‘안개 낀 장충단 공원’으로 그를 있게 한 배상태의 ‘마지막 잎새’와 ‘영시의 이별’이었다. 그리고 1971년 11월 7일 이종환이 진행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 방송을 마치고 스물아홉의 그는 영원히 밤하늘의 별이 되었다.
1981년 MBC 특집 여론조사에서 배호는 좋아하는 가수 1위에 뽑혔고 1998년 조선일보가 실시한 건국 이후 음악 전문가 조사에서 6위에 올랐다. 2001년 KBS 조사에서도 타계 가수 중 당당히 1위에 올라 세기가 바뀌고도 식지 않는 그에 대한 사랑을 증명했다. 유독 비와 이별의 시정을 사랑했던 그의 노래와 함께.
강헌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