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모리 정권때 빈곤율 낮추려”… 20만명 피해 주장도
인권단체 의혹 제기… 현 정부 지난달 전면조사 착수

페루에서 이런 일을 당한 사람은 비고 씨뿐이 아니다. 현지 인권단체들은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사진)이 집권했던 1990년대에 2000명이 넘는 여성이 동의 없이 불임수술을 당했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선 보고되지 않은 사례까지 합치면 피해 여성이 20만 명에 육박할 것이란 추정도 한다.
CNN과 남미 현지 언론들은 21일 “올해 7월 집권한 오얀타 우말라 정부가 후지모리 정권 당시 자행된 강제 불임수술 의혹에 대해 지난달부터 전면 조사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이 문제가 표면화된 것은 2000년대 초 페루 정부와 한 피해자 가족의 소송 건이 알려지면서부터다. 1996년 33세였던 마리아 메스탄사 씨는 “당신은 이미 자녀가 5명이 넘어 불임수술에 동의하지 않으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병원 측의 협박에 못 이겨 불임수술을 받은 뒤 그와 관련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사법당국은 2009년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이 건에 대한 수사를 보류했다. 하지만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인 게이코 후지모리가 올해 대권에 도전했다 실패하면서 불임수술 문제에 대해 전반적인 재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수술 피해자들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지만 후지모리 정권 당시 관료들은 “수술동의를 일일이 받았다”며 맞서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보건장관을 지낸 마리노 바우에르 씨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 정책은 빈곤층을 타깃으로 삼지 않았고 하물며 (수술을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1990∼2000년까지 권좌에 머물렀던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이미 부패 등의 혐의로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