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명의 밴드와 6명의 배우들, 록-컨트리-재즈 넘나들며 역동적인 무대 펼쳐◇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
과거의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환상 속에 사는 엄마(박칼린)와 “평범함 같은 것은 안 바라. 그 주변 어디만 돼도 견딜게”라는 딸의 이중 트랙을 통해 현대 여성의 무의식을 파고 든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뮤지컬 해븐 제공
여주인공 다이애나의 가정은 겉보기엔 완벽하다. 헌신적인 건축설계사 남편 댄(남경주, 이정열)과 잘생기고 유머러스한 열여덟 아들 게이브(최재림, 한지상), 똑똑하고 야무진 열여섯 딸 나탈리(오소연). 문제는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다이애나가 철저히 무능한 존재라는 점이다. 그는 16년째 조울증과 과대망상증에 시달리는 여자다.
그래서 다이애나의 가정은 속으로 골병이 들었다. 남편은 호전됐다가 악화되기를 반복하는 아내의 병 때문에 지쳤고 외롭다. 딸은 정신병 치료를 위해 약쟁이가 된 엄마로 인해 애정결핍에 시달리다보니 욕설을 입에 달고 다니는 욕쟁이가 됐다. 오직 아들만이 엄마를 이해해주고 달래줄 줄도 아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이 뮤지컬의 비범함은 환상의 그 대칭적 이중구조를 꿰뚫고 있다는 점이다. 1막이 그 환상의 달콤한 약효를 보여준다면 2막은 그 부산물로서 약물과 전기충격치료(ECT)의 쓰디쓴 후유증을 보여준다. 1막에서 표면적 갈등구조를 보여주는 주요 테마곡이 2막에선 그 갈등 아래 숨은 심층구조를 드러내주는 곡으로 변주된다.
주요 장면과 음악도 이렇게 겹겹이 구조화돼 있다. 다이애나를 중심으로 때론 남편과 아들, 때론 남편과 정신과 의사(최수형), 때론 아들과 딸의 겹겹의 대칭구조가 펼쳐진다. 엄마 아빠의 쓰라린 옛사랑도 딸 나탈리와 그 남자친구 헨리(이상민)의 가슴 시린 풋사랑과 대위법적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독창으로 시작한 노래는 이중창, 삼중창, 사중창, 육중창으로 확산된다.
높이 6.8m, 폭 17m, 깊이 4.3m의 철골구조물로 이뤄진 ‘넥스트 투 노멀’의 무대에 피라미드 대형으로 서서 노래를 부르는 6명의 배우들. 뮤지컬 해븐 제공
하지만 다이애나는 미국 중산층 여성만 대변하지 않는다. 진짜 현실은 외면한 채 드라마와 영화 속 ‘환상 속 그대’에만 취해 사는 이 땅의 수많은 여성들의 모습도 그에게 투영된다. 현빈과 원빈을 놓고 누가 더 좋다고 논하는 그들과, 프로작과 바륨 같은 신경안정제 중 하나를 고르는 다이애나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작품은 또한 우울하지도 않다. 자기연민의 거품을 빼고 주인공들이 스스로를 풍자할 줄 아는 어른스러움을 갖췄기 때문이다. 록과 컨트리, 재즈를 넘나드는 강렬한 비트의 음악과 3층 높이(6.8m)에 960개의 조명을 장착한 독특한 철골구조물 무대도 현대적 감각을 물씬 풍긴다. 열두 개 공간으로 분할된 이 무대에 곳곳에 배치된 7명의 밴드와 6명의 배우가 유기적으로 빚어낸 역동성과 입체성은 이 작품의 비장의 무기다.
다이애나 역으로 처음 뮤지컬 주역에 데뷔한 박칼린 씨는 정확한 발성과 여유 넘치는 연기로 일반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같은 역을 맡은 일본 뮤지컬 전문극단 시키 출신의 베테랑 김지현 씨에게 결코 밀리지 않았다. 김지현의 다이애나가 가녀린 느낌이 강하다면 박칼린의 다이애나는 더 주체적인 여성으로 다가섰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 내년 2월 12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6만∼9만 원. 02-744-4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