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루비란 진나라 때 양양 사람들이 양고의 선정(善政)을 잊지 못해 그의 비(碑)만 보면 눈물을 흘렸다는 데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에서 타루비가 세워진 첫 인물은 이순신 장군이다. 문경새재로 오르는 길에는 역대 관찰사와 현감들의 송덕비가 일렬로 서 있다. 총 26기의 비 가운데 충렬비 1기, 탑비 2기를 제외한 23기가 지방수령들의 은공을 기리는 송덕비(頌德碑)다. 다른 비는 모두 석조(石彫)지만 하나는 무쇠로 만든 철비(鐵碑)다.
▷김훈의 소설 ‘흑산(黑山)’에는 ‘작은 마을에 일년 동안 현감이 네 번 바뀌어 떠나는 수령의 전별금을 모으고, 돌을 캐고 다듬어서 송덕비를 세우는 사이에 신관 행차가 또 들이닥친다’고 백성들의 고통을 적고 있다. 이러다 보니 끼닛거리도 없는 마을 어귀에 송덕비 스무 개가 즐비하게 들어섰다는 것이다. 나라 전역에 허다한 송덕비를 보면 훌륭한 목민관(牧民官)이 많았다는 말인데 정말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송덕비는 세도정치가 극에 달해 매관매직과 가렴주구가 성행했던 헌종 이후 집중됐다. 고부군수 조병갑은 태인현감을 지낸 부친의 송덕비를 세운다며 돈을 거두다 동학농민운동의 도화선을 제공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