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한국법인 세운 마쓰모토 마사타케 후지필름 코리아 사장

마쓰모토 마사타케 사장은 23일 인터뷰에서 “필름이 워낙 잘돼 2000년대 초반 디지털카메라로의 방향 전환이 늦었다”며 “이제는 고유의 기술로 승부를 볼 때가 됐다. 내년에 모두 놀랄 만한 카메라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후지필름 일렉트로닉 이미징 코리아 제공
“우리가 언제부터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했는지 아세요? 1970년대부터입니다. 기술은 있었지만 경영진은 당장 잘되는 필름산업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어요.”
1위 회사라도 잠깐 졸다 눈 떠보면 어느새 내리막길에 있는 시대. 정보기술(IT) 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등장하는 ‘파괴적 혁신’ 기술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됐다. 대표적인 곳이 카메라 회사다.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해 업계를 뒤집어 놓더니, 최근에는 스마트폰 카메라가 보급형 기종을 위협하고 있다.
○ 필름사진 이끈 코닥-아그파 추락
하지만 실제 돈을 벌어주는 사업부는 필름이었다. 필름을 많이 팔려면 필름카메라가 잘돼야 했다. 게다가 당시 기껏 200만∼300만 화소에 그쳤던 디지털카메라와 ‘색이 살아 있는’ 필름카메라는 품격부터 달랐다. 경쟁사 코닥도 1975년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했지만 10억 달러를 투자해 차세대 필름카메라에 ‘다걸기(올인)’하고 있었다. 눈앞의 자기 이익을 깎아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집집마다 PC와 노트북이 급속히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컴퓨터에서 사진을 빨리 보고 싶어 했다. 순식간에 디지털카메라가 대세가 됐다. 카메라에는 생소했던 소니, 삼성전자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렌즈 기술이 뛰어나고, 일찍이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했던 후지필름이 이때라도 바로 방향전환을 했더라면….
마쓰모토 사장은 “세상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경영진, 세계 판매법인, 영업, 기술진의 생각이 다 달랐고,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며 “그러던 사이 2000년 20%이던 일본 디지털카메라 시장 점유율이 2008년 6%대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거대한 조직이 갑자기 바뀌기란 쉽지 않았다. 후지필름뿐 아니라 휴대전화 시장의 ‘공룡’ 노키아도 마찬가지다. 한때 혁신의 대명사로 불렸고, 진작 스마트폰을 만들었지만 자사의 운영체제(OS)를 고집하며 우왕좌왕하다 애플과 삼성전자에 밀리고 말았다.
후지필름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강력한 구조조정과 사업 다각화를 단행했다. 마쓰모토 사장은 “간부사원들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결론을 내려 과장급 이상을 감축하고 인력도 재배치했더니 2009년 시장점유율이 13%까지 뛰었다”고 전했다. 디지털 혁명의 파고를 겨우 넘자 다시 스마트폰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이제는 보급형으로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길 수 없게 됐다. 고급 기술로 승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쓰모토 사장은 이날 새로 선보인 프리미엄 카메라 브랜드 ‘X 시리즈’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며 3년 안에 한국시장 점유율을 현재의 5%에서 15%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소비자들에게 우리들의 기술을 차근차근 보여주자는 전략을 세웠다”며 “먼저 올해 1200달러짜리 고급형 디지털카메라를 내놓았고, 내년 2월에는 캐논의 3000달러급 카메라 수준과 맞먹는 미러리스 카메라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마쓰모토 사장은 “소프트웨어, 무선통신을 연결하는 기술은 삼성도, 소니도 할 수 있지만 수십 년간 축적된 렌즈와 센서는 따라오기 어렵다”며 “소니, 삼성, 올림푸스 등이 내놓는 고만고만한 미러리스를 뛰어넘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독자적인 렌즈, 센서, 이미지프로세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가지 기술에 주력했던 우직함을 강점으로 밀고나가겠다는 것이었다.
마쓰모토 사장은 “TV는 가격을 낮춘 삼성이 소니를 이겼지만, 사람들이 가까이서 살피는 카메라는 결국 소비자들이 품질을 알아줄 것”이라며 고가(高價) 전략에 자신감을 보였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