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
2006년 송월주 스님의 ‘인도성지순례기’ 출판 기념회에서 참석자들이 축하 떡을 자르고 있다. 강원용 목사, 고건 전 총리, 지관 스님, 송월주 스님, 오형근 동국대 명예교수, 최근덕 성균관장(왼쪽부터). 동아일보DB
“당신은 여당 체질인데 안 나가는 게 좋겠습니다.”(송월주 총무원장)
1995년 민선 1기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고건 명지대 총장이 찾아왔다. 큰일을 앞두고 원로들의 조언을 많이 구하던 그는 김수환 추기경과 강원용 목사에 이어 나를 찾아왔다. 고 총장은 그 선거에 나서지 않았고, 나중에 조순 씨가 출마해 당선됐다.
“조세형 총재 권한대행이 출마를 권유하던데요. DJ의 뜻이라는데….”
“지금은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때는 DJ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였다. 결국 그는 출마해 민선 2기 시장이 됐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탄핵 사태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을 뿐 아니라 총리와 서울시장을 두 차례씩이나 지낸, 말 그대로 ‘행정의 달인’이다. 유능함과 청렴,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인 성향도 그의 매력이다.
“아들에게 세 가지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어느 파당에도 휩쓸리지 마라, 돈을 멀리해라,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겁니다. 근데 돈과 파당 문제는 잘 지키는데 술은 못 끊는 것 같습니다. 그걸 빼면 내 아들이지만 믿을 만합니다.”(고 박사)
바둑도 아닌 정치에서 ‘복기’가 큰 의미는 없다. 그러나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나는 고건이란 인물에게 정치는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그는 2006년경 한때 3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대선 출마를 준비했다. 당시 그를 만나 “정말 대권에 뜻이 있다면 북한 핵실험 등 이슈에 대해 명확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침묵을 지켰고, 지지율이 떨어지자 2007년 1월 대권 포기를 선언했다.
나는 출가 인생 50여 년을 불교정화와 종단개혁이라는 필생의 목표를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은 때로 쓸개가 바싹바싹 마를 듯 힘겨웠지만 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하물며 나라를 경영하는 대권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물론 그는 “아쉬웠다” “후회한다”는 식의 언급은 하지 않았다.
내가 지켜본 고 전 총리는 본인이 섭섭해할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정치인이 아니다. 누구를 공격하거나, 돈을 끌어 모으거나, 권력으로 다른 사람을 엮는 것과는 체질적으로 거리가 멀다. 밥상을 차리기보다는, 차려진 밥상을 다른 이들과 골고루 나눠 맛있게 잘 먹는 스타일이다.
역대 정권의 권력자와 관련해 이런저런 말이 나올 때가 있다. 누구보다 그들을 잘 아는 고 전 총리는 “이 대목은 내가 알고 있는데 잘못됐다”고 할 뿐, 흐름에 편승하는 법이 없다. 딱 거기까지다. 대선 과정에서 그를 지지한 한 분은 “고 총리는 좋은 대통령 감이지만 좋은 대통령 후보는 아니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개신교 신자인 고 전 총리는 불교계와도 인연이 각별해 1995년 연등축제의 제등행렬을 시 문화행사로 등록하고, 우정로 정비사업에도 큰 도움을 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개신교 등 다른 종교계에도 비슷한 형태의 지원이 가능한가를 타진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그는 실사구시(實事求是)와 공평무사(公平無私)가 몸에 밴 행정가다. 극단적인 주장이 힘을 얻는 요즘 분위기에서 그가 설 입지는 매우 좁다. 그래서 그의 경륜이 아깝다. 언젠가 그의 부친과 나눈 술 얘기를 꺼냈더니 그는 “아, 그렇지요”라며 특유의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정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18>회에서 송월주 스님은 은사인 ‘지리산 호랑이’ 금오 스님을 회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