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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누드와 포르노

입력 | 2011-11-24 03:00:00


중국에서는 포르노를 춘궁도(春宮圖) 혹은 춘궁화(春宮畵)라고 부른다. 춘궁은 태자가 거처하던 곳이다. 춘궁도는 황실에서 태자에게 성을 가르치기 위해 제작됐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춘화라고 부른다. 춘궁도나 춘화는 성행위나 성기를 묘사한 그림이다. 성행위와 상관없이 알몸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그림은 동북아시아의 전통 회화에 없다. 누드는 서양에서 온 것이다.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는 “오페라가 17세기 이탈리아에서 창안된 예술 형식이듯 누드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인이 창안한 예술 형식”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에 유학하고 온 일본 근대회화의 아버지 구로다 세이키(黑田淸輝)는 1895년 벌거벗은 여자가 거울을 마주하고 머리를 손질하는 모습을 그린 ‘아침 화장’이란 작품을 출품했다. 이 그림은 공공장소에 전시된 일본 최초의 누드화였다. 당시 일본인들은 우키요에(浮世繪)에서 춘화를 많이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 누드화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란을 벌였다. 춘화는 비밀리에 숨어서 보던 것인데 누드화라는 이름으로 공개적으로 전시되니 당혹했던 것이다.

▷스타급의 중국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가 음란 사진 유포 혐의로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아이웨이웨이 자신과 여성 4명이 나체로 의자에 앉거나 서 있는 모습을 찍은 ‘일호팔내도(一虎八내圖·한 마리 호랑이와 여덟개 젖꼭지)’ 사진이 문제가 됐다. 70명의 중국 누리꾼은 ‘정부는 들어라. 누드가 색정(色情)은 아니다’라는 제목을 달아 자신들의 누드사진을 잇따라 올리며 중국 당국에 항의했다. 한 홍콩인은 “아이 씨의 누드사진에서 어떤 음란성도 느낄 수 없다”고 아이웨이웨이를 옹호했다.

▷19세기 중반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와 ‘풀밭위의 점심’은 프랑스 파리 예술계에 일대 소동을 몰고 왔다. 지금 보면 왜 그런 소동이 있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인간의 인식은 많이 변했다. 여성의 성기를 적나라하게 그린 구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은 1866년에 이미 그런 그림이 그려졌다는 사실보다도 1995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당당하게 내 걸려 일반 관객이 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누드와 포르노의 경계는 계속 변한다. 오늘날 더 빨리 변하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