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씨는 이 작품 대본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기금에 지원 신청서를 냈다. 하지만 이 기금은 사후 지원 방식이라 어차피 이 공연의 예산과는 관계가 없다. ‘고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공연을 강행하기로 했다. 배우 12명을 무보수 출연 조건으로 섭외한 것이다.
한 달 반의 연습 기간과 한 달 공연에 배우들이 출연료를 한 푼도 받지 않기로 했지만 이 공연의 예상 손익계산서(표 참조)는 참담하다. 창작 지원금 없이 대학로에서 정통 연극을 공연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요즘 연극계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입장 수익은 어떨까. 전체 23회 공연 동안 유료 관객으로 객석을 다 채운다고 가정해도 2415만 원. 사실 대학로에서 정통 연극의 경우 평균 유료 객석 점유율이 높아야 50%임을 감안할 때 사실상 불가능한 수익이다. 공연을 강행하면 수천만 원의 손해가 눈에 빤히 보이는 상황. 이 씨는 “무모하다고 다 말렸지만 공연을 통해 하고 싶은 얘기는 해야겠다. 돈 벌려고 연극하나. 공연의 질을 높이는 데 모든 에너지를 다 쏟겠다”고 말했다.
연극계의 힘든 상황은 전국이 비슷하지만 요즘 서울 연극계 상황은 특히 심각하다. 공연예술 창작기금 지원의 대부분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와 서울시 산하 서울문화재단을 통해 이뤄진다. 문제는 예술위 지역협력형사업의 서울 지역 배분금액 비율이 2009년 38.4%→2010년 24.6%→2011년 15.7%로 급감하면서 지원 건수가 줄었기 때문. 서울문화재단의 공연 창작활성화 취지로 지원하는 연극 작품은 2009년 116건(23억1200만 원)에서 올해 62건(11억3000만 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건당 평균 지원액도 1800만 원 정도라 최근 10년간 상승 추세인 대학로의 소극장 대관료를 간신히 해결하는 수준이다.
지원금을 못 받으면 공연을 못하고 지원금을 받아도 손해 보는 상황에서 정통 연극은 크게 위축되고 있다. 극단이 공동으로 극장을 운영하거나 배우 출연료를 줄이기 위해 2인극이 많아지는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 대신 코믹물과 뮤지컬, 성인물 등 상업공연은 득세한다.
‘빨간시’에 배우들이 무보수 출연하기로 한 데는 이런 현실에 대한 오기도 작용했다. 주인공 ‘할미’ 역의 강애심 씨는 “연극판이 원래 돈으로 굴러가는 곳이 아니다. 요즘 큰 제작사가 만드는 공연엔 사람 냄새가 안 난다”고 말했다. ‘염라’ 역의 배우 유병훈 씨도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연극에 목말랐다”고 말했다. 공연은 12월 10일부터 내년 1월 1일까지. 1만∼2만5000원. 010-9331-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