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데까지 간 ‘폭력 국회’
국회의사당 내에서, 국회의원이 최루탄을 투척하는 사태로 인해 한국 의회정치가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세계 의정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국회 내 최루탄 폭력으로 대한민국 18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불명예를 안고 전 세계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1966년 당시 김두한 의원이 사카린 밀수사건에 항의하며 본회의장에 인분(人糞)을 투척하고, 전두환 정권하에서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1985년 예산안 처리를 위해 본회의장에 철봉을 설치한 적은 있지만 이는 수십 년 전, 서슬 퍼런 독재 정권 시절의 일이다. 특히 단일 임기 내에 해머 전기톱 소화기에 이어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는 있는 최루탄까지 폭력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18대 국회가 처음이다.
해외 언론은 이번 사건을 자세히 전하며 한국의 국격(國格)을 문제 삼았다. 미국의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한국 국회, 한미 FTA 저지 위해 최루탄 사용’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정당들은 논란이 있는 정책을 둘러싸고 폭력에 의존하는 역사를 갖고 있다”며 2008년 한미 FTA 상정 과정에서 등장한 해머를 예로 들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사진과 함께 최루탄 사건을 보도하면서 “한미 FTA로 격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라며 “2008년 당시 야당 의원들은 망치를 동원해 방어벽을 친 회의실로 진입하려 했었다”고 전했다. CNN 등 미 주요 방송사는 ‘국회에 최루 가스(tear gas) 등장’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계속 내보내고 있다.
여야 의원들도 정치적 이해득실을 떠나 망연자실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런 모습을 보려고 국회의원 된 것이 아닌데 참담하다”고 했다. 최루탄 투척의 장본인인 김선동 의원이 속한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최루탄 투척은 너무 심했다”며 당 이미지가 ‘폭력’으로 덧칠되는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태라면 국회가 민의의 수렴은커녕 외부의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국회 본회의장에 최루탄을 버젓이 들고 들어가 ‘폭파’를 운운한 사람을 공천하는 한국 정치의 후진적 인력 충원 및 평가 시스템을 하루빨리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내년 총선에서는 반드시 후보들의 이력과 활동을 평가해 도덕적 불감증에 빠진 정치권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민노당 이정희 대표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최루탄 투척 사전 논의설을 묻는 데 대해 시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는 “자세한 말씀은 드리지 않겠다”면서도 “한미 FTA 비준을 막기 위해서는 민주노동당은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 어떤 비난이라도 다 받고, 다 질 각오가 돼 있다, 책임질 것 있으면 진다고 공언한 바 있다”고 했다. 김 의원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자신의 최루탄 테러에 대해 반성 없이 “진짜 테러범은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다. 대한민국 국민, 서민의 꿈과 희망을 빼앗는 테러를 했다”고 주장했다.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대한민국 헌정회는 김 의원을 국회에서 추방할 것을 공개 촉구했다. 헌정회는 긴급회동을 가진 뒤 성명을 내고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서의 최루탄 투척은 어떤 명분으로도 방임될 수 없는 엄중한 범죄행위”라고 질타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