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찔린 다음날 중앙위 격돌
23일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한 당원(오른쪽)이 “왜 당원들의 뜻도 묻지 않고 신당 창당을 추진하느냐”고 거칠게 항의하자 당직자가 제지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회의는 손학규 대표가 발표한 ‘12월 17일 혁신과통합 등과의 신당 창당, 통합전당대회 개최’란 로드맵을 의결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구당파는 “날치기 시도를 반드시 저지하겠다”며 별렀다. 양측의 세(勢) 대결 양상을 보여주듯 전체 중앙위원 454명 가운데 절반 이상인 247명이 참석했다. 회의장에는 ‘당헌대로 이행하라’는 유인물과 ‘통합 추진을 당론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유인물이 동시에 뿌려졌다.
손 대표가 인사말을 시작하자 “손학규 물러가!” “나쁜 ×” 등 고함이 터져 나왔다. 손 대표는 잠시 발언을 멈췄다가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 목표 앞에서 야권통합은 시대적 요구이며 국민의 명령”이라고 말했다. 한 당원이 “손학규는 한나라당으로 돌아가”라고 외치자 당직자들이 몰려들면서 한동안 몸싸움이 벌어졌다.
▼ “통합도 날치기 하나” 욕설-삿대질 ▼
손 대표 측 이인영 최고위원은 “야권통합 추진 방안을 이 자리에서 의결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러나 유선호 의원은 “당헌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고 맞받았다. ‘합당 등의 사항은 전당대회에서 의결하되 전대 소집이 곤란한 경우엔 중앙위에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돼 있는 당헌 규정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공방이 계속되자 이 의장은 오후 8시 40분경 “27일 중앙위를 다시 열어 (신당 창당의 건 등을) 의결하자”고 했다. 이에 박지원 의원은 “의결 안건이 없는데 뭘 처리한다는 거냐”며 “이명박 대통령에게 당한 그 방법(날치기)을 써먹으려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비판했다.
공교롭게도 사회자인 이 의장은 2003년 새천년민주당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분당(分黨)되는 사태 때 당시 신당 창당 반대파 인사에게 머리채를 잡혔고, 이 사건은 분당의 도화선이 됐다. 회의를 지켜보는 사람들 사이에선 “또 분당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회의는 6시간 반 만인 오후 10시 반 결론 없이 끝났다.
양측은 전날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눈 뜨고 당한 일로 인한 지도부의 거취를 두고도 뚜렷한 시각차를 보였다. 손 대표는 “비준안 처리를 막아내지 못한 것 자체가 야권 단결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대여 투쟁을 선포했고 정동영 최고위원은 “지도부가 통합을 만들어내는 것이 무한책임을 지는 자세”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대편은 한미 FTA 전투에서 무력함을 고스란히 노출해 놓고 신당 창당을 논의하는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전쟁에서 패하고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정당이 무슨 소리를 한들 믿어주겠나”라며 “지도부 전원이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가운데 소설가 공지영 씨는 트위터에 한미 FTA 비준안 강행 처리와 관련해 ‘손 대표, 한나라당서 파견된 분, 맞죠?’라는 글을 올렸다. 공 씨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야권 단일후보였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멘토’였다. 그는 ‘손 대표와 김진표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의 한미 FTA 비준안 날치기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무능하고 썩어빠진 제1야당, 손학규 민주당’ 등의 트윗 글을 재인용(리트윗)한 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유치송 전 민주한국당 총재 이후 손 대표 같은 야당 대표는 처음 본다’고 했다. ‘강력 저지’를 장담하다 허를 찔린 것이 고의가 아니냐는 비난이었다.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