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존 린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장
수도인 다카르만 하더라도 경제의 활력이 보였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희망을 찾기 힘들었다. 현대식 상수도는 아예 볼 수 없었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쓰고 있었다. 화장실이나 쓰레기 수거 역시 아무도 관리하지 않았고 우리가 머문 숙소는 자가 발전으로 전기를 돌렸다.
세네갈과 한국은 1960년대 국가 재건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출발점이 같다.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을 끝낸 뒤고, 세네갈은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한 시기다. 하지만 2011년의 한국은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돕는 나라가 됐고, 세네갈은 여전히 도움을 받고 있다.
세네갈 어머니들을 보면서 나는 고향인 전남 순천에서 본 한국의 어머니들을 떠올렸다. 어릴 적 나는 친구 집에서 자주 잤다. 1960년대 한국인 대부분이 그랬듯 가난하고 가진 것은 없었지만 어느 집에 가든지 구석구석 잘 정돈돼 있었고 아이들의 옷도 깨끗한 편이었다. 어머니들은 하루 종일 엉덩이를 붙일 새 없이 이리저리 다니며 집 안을 정리하고 일을 도우며 아이들을 챙겼다. 자식 교육을 위해서는 뭐든 희생했고 아픈 곳이 있더라도 자신의 몸을 먼저 챙기는 어머니는 많지 않았다. 나는 몰라도 내 자식만큼은 더 나은 환경에서 살게 하겠다는 의지가 희생의 원천이었다. 이런 맹목적 믿음은 부작용도 낳았지만 인적 자원 개발의 원천이 됐다.
전라도 출신이어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 분위기에서 자랐지만 그가 일군 경제개발 성과는 부인하기 힘들다. 박 전 대통령은 희망을 잃은 한국인들에게 “우리도 잘살 수 있다. 조금 더 노력해 보자”고 희망의 메시지를 보냈고, 때로는 한국인들이 먹기 싫어하는 약을 억지로 먹게도 했다. 그의 리더십은 ‘새마을운동’이라는 브랜드로 제3세계 국가에서 유명한 개발 모델이 되고 있다. 새마을운동은 부녀회 조직을 통해 어머니의 힘과 리더십의 힘이 만나면서 폭발적 에너지를 냈다.
봉사 기간에 하루 일과가 끝나면 현지 의대생들과 세네갈의 미래에 대한 대화를 나눴고, 우리는 ‘가난이 최고의 인권 침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한국인들은 매사에 불만이 많다. 하지만 이는 현실에 좀처럼 만족하지 않고 늘 더 잘할 방법을 궁리하는 도전의 단초다. 한국식 발전 모델을 구체화하고 널리 알리는 일은 세계 시민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일 뿐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한국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그려나갈 기회가 될 것이다.
인요한(존 린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