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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 살해 고교생 “사식으로 피자 넣어달라”… 현장 검증도 태연

입력 | 2011-11-26 03:00:00

경찰, 모친 살해 고교생 조사
“학대 기억에 해방감 느낀듯”… 학교-이웃의 무관심도 문제




성적 문제로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친어머니를 살해하고 시체를 8개월간 방치한 혐의(존속살인 등)로 24일 구속된 고3 수험생 지모 군(18)이 검거된 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지 군은 유치장에 들어간 뒤 비교적 밝은 표정이었다고 한다. 아버지(52)에게 “사식(私食)으로 피자를 넣어 달라”고 하기도 했다. 조사를 받으면서 울먹이거나 후회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대체로 담담하게 범행 사실을 자백했다. 경찰 관계자는 “아버지가 말리는데도 묻지 않은 것까지 자세히 진술했다”고 말했다.

25일 오후 현장검증에서도 지 군은 차분한 모습으로 40여 분에 걸쳐 범행 과정을 재연했다. 현장에서는 지 군이 위조했다는 성적표와 혈흔이 묻은 그의 바지가 발견됐다.

이영선 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교수는 “지 군이 감정을 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모범생으로 비쳤던 것”이라며 “범행 이후 무의식적으로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수 있지만 어머니에게서 풀려난 해방감이 더 컸기 때문에 정상 생활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 군의 아버지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이 일곱 살 때 한여름에 긴팔 긴바지를 입었기에 걷어 보니 온몸에 퍼렇게 멍이 들었더라. 아내가 나에 대한 증오를 아들에게 표출한 것 같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유진 한국청소년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부모와의 강력한 정서적 유대감인 애착관계는 어릴 때 형성되는 것”이라며 “어릴 때부터 폭행당해온 지 군은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머니에게 배운 폭력적 극단적인 방법으로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지 군은 경찰 조사에서 당초 3월 13일이라고 했던 범행 날짜를 3월 20일로 바꿔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부모회는 3월 22일이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진술을 번복하지 않았다”며 “28일 프로파일러를 불러 지 군의 심리상태를 분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 군의 집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학교를 포함한 주변에서 지나치게 무관심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학교 측은 지 군이 갑자기 성적이 떨어지고 수차례 무단결석을 했는데도 상담교사와 대화하도록 조치하지 않았다. 지 군은 1학기 중간고사 때도 아예 시험을 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웃 주민들도 “수능이 다가오는데도 어머니가 나타나지 않아 모두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전했다. 지 군의 아버지는 “아들이 6월경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엄마가 나타나지 않아 이상하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외국에 갔다’는 아들의 말을 믿었다”고 했다.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정윤식 기자 jy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