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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동 靑앞 시위… 시민들 “우리가 최루탄 던졌다면 당장 구속”

입력 | 2011-11-26 03:00:00

반성은커녕 자기 합리화만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25일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서명 포기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당시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25일 청와대에 나타났다. 그는 분수대 앞에서 1시간여 동안 ‘이명박 대통령님,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서명 포기하십시오’라고 적은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최루탄 투척과 관련해선 “서민의 꿈과 희망을 앗아간 한나라당 의원들이 최루탄으로 인해 눈물을 흘린 것은 의미가 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사과나 반성은 없었다.

○ “한나라당 의원들 눈물 흘린 것 의미 있다”


김 의원이 오전 11시 55분 카니발 승합차에서 내리자 미리 기다리던 2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팻말을 든 채 분수대까지 50여 m 걸어간 그는 “한미 FTA 발효로 인해 피눈물을 흘릴 서민의 절절한 뜻을 전달하기 위해 왔다”고 시위 이유를 밝혔다. 시위에는 보좌관 2명이 동행했다.

김 의원은 “내가 전달한 것은 최루탄이 아니라 FTA로 인해 흘릴 서민들의 피눈물”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다른 방법은 없었느냐는 질타에 “서민 운명이 벼랑 끝에 내몰렸는데 두 손 놓고 있어야 했나”며 “더 좋은 방법이 있어 알려주면 따르겠다”고 했다. ‘국회의원이어서 처벌받지 않고 있다’는 비판엔 “국회의원은 서민의 권익을 대변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최루탄의 입수 경로에 대해서도 “1980년대 대학가에 가면 불발탄이 굴러다녔다. 주운 것은 1980년대일 수도 있고 2010년일 수도 있다. 핵심은 FTA 비준”이라고 피해갔다. 김 의원이 사용한 최루탄은 1980년대 제조된 것이다.

김 의원은 일부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자신을 영웅시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똑같은 칼도 강도의 손에 있으면 흉악한 무기이고 의사에 손에 있으면 생명을 살리는 도구가 된다”며 자신의 최루탄 투척을 합리화했다. ‘최루탄 사건으로 한나라당의 강행 처리가 가려졌다는 비판도 나온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없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김 의원은 향후 일정에 대해 “1인 시위는 오늘로 마친다. 다음 행동은 국민과 함께 모색할 것”이라고 답했다. 민노당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비준안을 서명하는 29일 어떤 액션을 취할 것인지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김 의원은 경찰에 신고한 시위 시간(1시간)을 정확히 지키고 떠났다. 이번에는 법을 준수했다.

○ 외국인 관광객은 “신기해”


청와대 앞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은 김 의원의 1인 시위를 보고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국회의원’이란 기자의 설명에 50대 남성 말레이시아 관광객은 “최루탄을 왜 던졌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터키인 관광객 엠레 씨는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도 “(최루탄 투척이)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절박하게 싸우는 심경은 이해할 것 같다”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일본인 나카노 아키라 씨는 “일본인은 한국을 역동적인 국가라고 생각한다”며 “일본 의회에서 최루탄을 던지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이런 격렬한 저항을 한국적 특성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시민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현모 씨(48)는 “일반 시민이 국회에 최루탄을 던졌다면 금방 잡혀갔을 것 아니냐”며 “국회의원이라고 봐주는 건 부당하다”고 꼬집었다.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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