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연예인의 경계가 모호해진 ‘폴리테이너 2.0’시대다. ‘1.0’시대에는 인기 연예인이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되거나 군중 동원의 수단으로 ‘활용’됐다. 신영균 강신성일 전 의원이 대표적 사례다. 연예활동을 하면서도 꾸준히 정치권과 관계를 유지한 2세대로는 고 이주일(본명 정주일) 전 의원과 정한용 전 의원, 이덕화 씨를 꼽을 수 있다. 오른쪽 은 독립적 위치에서 민감한 이슈를 거침없이 말하는 2.0 대표주자 격인 김제동 김여진 정봉주 씨. 동아일보DB
#2. 같은 날 오후 8시 반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의 멤버인 정봉주 전 열린우리당 의원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무효 정당연설회’에 참여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막지 못해 죄송하다. 30일 오후 7시 10만 명이 모일 수 있는 장소에서 (한미 FTA 저지를 위한) ‘나꼼수 콘서트’를 개최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변 시민들은 ‘나꼼수’ ‘정봉주’를 열광적으로 외치며 록 콘서트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정치와 연예인의 경계가 모호해진 ‘폴리테이너 2.0’시대다. ‘1.0’시대에는 인기 연예인이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되거나 군중 동원의 수단으로 ‘활용’됐다. 신영균 강신성일 전 의원이 대표적 사례다. 연예활동을 하면서도 꾸준히 정치권과 관계를 유지한 2세대로는 고 이주일(본명 정주일) 전 의원과 정한용 전 의원, 이덕화 씨를 꼽을 수 있다. 오른쪽 은 독립적 위치에서 민감한 이슈를 거침없이 말하는 2.0 대표주자 격인 김제동 김여진 정봉주 씨. 동아일보DB
초기 폴리테이너는 인기 연예인이 국회의원에 당선되거나 유력 정치인의 군중 동원 기능을 했다. 신영균, 강신성일 전 의원 등 1세대 폴리테이너는 한국 영화계 최고의 스타로서 정치권에서 그 힘을 활용하기 위해 영입한 경우에 해당한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에 해당하는 2세대 폴리테이너는 이주일(정주일) 정한용 이덕화 씨 등으로 연예 활동을 하면서도 꾸준히 정치권과의 관계를 유지한 인물들이 대표적이다. 2007년 대선 때만 해도 이덕화 씨 등이 선거대책위원회 산하 ‘문화예술지원단’ 멤버 자격으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각종 유세를 지원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특정 세력의 ‘정치적 수단’이라기보다는 나름대로 독립적인 위치에서 민감한 이슈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며 정치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방송인 김제동, 배우 김여진 씨가 대표적으로, 특히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김제동 씨는 트위터 팔로어가 63만여 명, 김여진 씨는 15만1000여 명이다. 사실상 ‘SNS당’ 대표 수준인 것이다. 한나라당이 7·4전당대회에서 동원 가능했던 총 선거인단 수가 김제동 씨 팔로어의 3분의 1 수준인 21만여 명이다. 이들을 ‘소셜테이너’(소셜+엔터테이너)라고 부르는 것도 SNS의 힘과 무관치 않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가끔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이나 형평성을 잃는 경우도 있어 ‘견제와 균형’이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함께 요새는 종종 정치권이 연예인 또는 연예계화되는 현상도 발견되고 있다. 정봉주 전 의원이 ‘나꼼수’ 활동으로 현역 의원 시절보다 대중적 인지도가 더 높아졌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정 전 의원의 트위터 팔로어는 18만3000여 명이다.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의 ‘최루탄 투척’ 뒤 오히려 이를 적극 홍보하고 나선 것에 대해서도 일부 좌파 인터넷 매체는 ‘불멸의 김선동’이란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옹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결국 정당 정치가 유권자와의 소통에 실패하고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본적 존중이 사라진 상황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김용철 부산대 정치학과 교수는 “국회의원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유권자가 갈수록 없어지다 보니 ‘나꼼수’가 인기를 끌고 정치가 최소한의 권위조차 잃으면서 다른 분야에 영역을 내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