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은 소설가, 추계예술대 교수
그 엽서를 받고, 필자는 실현 가능해 보이지 않는 소망 하나를 품게 됐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속의 벤자민 같은 남자를 만나는 것이다. 영화 속 여주인공은 소녀에서 노파로 변해가지만, 벤자민은 조로증 때문에 쭈글쭈글한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서 시간과 함께 점점 젊음을 되찾아간다. 동과 서에서 각각 떠나오듯 젊음과 늙음에서 떠나온 두 남녀는 운명처럼 청춘 시절에 만나 열렬히 사랑하다 헤어지게 되는데, 벤자민은 어느 나라 어떤 장소에 가건 여자 주인공에게 엽서나 편지를 띄웠다. 세월이 흘러 벤자민이 갓난아이가 될 즈음 할머니가 된 여주인공은 침대에서 죽음을 기다리면서 간직해 왔던 편지 묶음을 딸에게 꺼내 보여준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던 엽서 한장
서 선생의 엽서를 받고, 기착지를 알 수 없는 길 위의 여행자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우체부는 없을까 고민하며 답신을 썼던 기억이 난다. 동양과 서양을 이어주고 시간과 시간을 이어주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었던 엽서 한 장, 그 엽서 한 장은 우리가 수많은 관계 속에도 파편처럼 흩어져 결핍을 느끼는 이유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허망한 소망의 반작용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필자도 여행지에서 엽서를 하나둘 띄우고 있었다.
11월을 며칠 남겨놓은 늦가을 막바지에, 문득 고은 시인의 ‘가을편지’가 떠오른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편지가 계절을 돌아보게 하고 계절이 사람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연유를 이제야 알겠다. 사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그 ‘누구’의 ‘그대’가 되어보지 못한다면 왠지 조금 쓸쓸할 것 같다. 그래서 그대 외롭다면, 아니 계절이 새삼 느껴진다면, 아스라이 그리운 얼굴이 떠오른다면 아끼는 펜을 쥐고 편지를 써보면 어떨까.
뜬금없이 무슨 편지타령이냐며 쑥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 고려대 교수이자 소설가인 송하춘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연애편지를 공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송 씨는 아내에게 보관하고 있는 연애편지들 가운데 한 통만 골라 달라고 요청했다. 받아본 적도 없는 연애편지를 어떻게 보관하냐며 아내는 오랫동안 감추고 있던 섭섭한 속내를 남편에게 드러냈다. 송 씨는 그 말을 듣고 결심을 하게 된다. 같은 방을 쓰는 아내임에도 연애편지를 쓴 것이다. 낭만적인 아내는 기꺼이 답장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한평생을 함께 산 부부는 초로의 나이에 용기 있게 연애편지를 띄웠고, 서로에게 그대가 돼 주었다. 그 편지들은 ‘편지 쓰는 작가들의 모임’에서 기획 출간한 서간집 ‘작가들의 여행편지’에 실려 있다.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도 우리가 조금씩 가슴 시리게 살아가는 이유는 혹여 누군가의 그대가 되는 방법을 잊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방법? 간단하다. 머리에 가만히 떠오르는 사람의 이름을 편지지에 적으면 된다. 계절이 바뀌고 있는데 안녕하신지 물어보면 된다. 단풍잎을 죄다 떨어뜨리게 하는 강한 바람이 불현듯 그대를 떠올리게 했노라고 쓰면 된다. 작가들처럼 미사여구와 절묘한 문장들로 상대방을 녹다운시킬 생각만 버린다면 편지 쓰기는 시쳇말로 식은 죽 먹기다. 인간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는 것이 진실한 마음이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 이러저러한 과정과 수고 끝에 편지가 완성되면 하얀 봉투에 접어 넣고 우표를 붙여보자.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해 쓴 글이 봉인되는 순간의 기쁨을 만끽하자. 편한 신발을 찾아 신고, 빨간 우체통을 찾아 은행잎이 툭툭 떨어져 내리는 가로수 길을 걸어가 보자.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 선 태양이 눈부시거든, 인간의 삶에도 때론 그대처럼 빛나는 순간이 있다고 태양에도 답신해도 좋을 듯하다.
김다은 소설가, 추계예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