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ce in a while, I smell Mexico,강미덕. 그림 제공 포털아트
어린 시절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의 대표적인 노래 중 하나인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를 자주 들었습니다. 당시 그 노래는 우리나라에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제목으로 번안돼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인 잉카인들 사이에서 ‘콘도르’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라는 뜻을 지닌 말이라고 합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맹금류일 뿐만 아니라 안데스 산맥의 바위산에 서식하는 그것은 철새가 아니라 대표적인 텃새로서 잉카인들은 자신들의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부활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대표적인 텃새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철새로 왜곡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에 대해 누군가 철새 정치인들을 비꼬기 위해서 그렇게 고의적인 번안을 했을 거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치 철새들과 달리 생태계의 철새들은 장엄하고 처절한 생존여행을 합니다. 이동하는 도중에 기상이변이나 시야 장애로 떼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있고 영양 결핍이나 농약 따위로 죽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겨울에도 얼음이 얼지 않고 춥지 않은 날이 많다 보니 철새가 떠나지 않고 눌러앉아 텃새가 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겨울철새 틈에 여름철새가 섞여 먹이 다툼을 하고, 때로는 나그네새가 눌러 앉아 철새들 틈에서 유유자적하는 게 목격되기도 합니다. 구만리장천을 날아다니는 그것들도 지구 온난화에는 생래적인 기질을 상실하게 되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철새의 날갯짓과 하등 다를 바 없습니다. 날다가 지쳐 잠시 쉬어 갈 때에도 호들갑스러운 인간의 발길과 소음에 놀라 수직으로 날아오르는 철새의 다급한 몸짓에서 인간의 초조하고 불안한 생존방식을 발견합니다. 숙명의 회로를 따라 날아가는 철새에게 왜 나느냐고 묻는 것이나 하루하루 생존경쟁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왜 사느냐고 묻는 것이나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니 한반도를 찾아오는 철새, 한철 날개 접고 쉬어가는 동안만이라도 부디 편히 지낼 수 있도록…쉿!
박상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