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정창권 엮음·지음/2만9800원·568쪽·글항아리
조선 말기 풍속화가 김준근의그림 ‘병신’의 일부(왼쪽)와 ‘소경문수’. 조선시대 장애인들은 지금보다 사회적 편견에서 자유로웠고 궁핍할 때는 집단으로 임금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글항아리 제공
장애인은 사회활동, 취업, 승진, 교육 등에서뿐 아니라 역사 서술에서조차 소외되기 쉽다. 현재 국내 등록장애인은 약 250만 명에 이르지만 장애인의 역사에 주목한 연구는 거의 없다. 사회적 약자의 역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는 역사와 문학, 회화, 음악, 법률, 풍속 등에 나타난 장애인 관련 기록을 꼼꼼히 갈무리했다.
저자는 조선 전기의 시각장애인 독경사(讀經士·경을 읽어 악귀를 몰아내는 직업) 단체인 ‘명통시’를 언급하며 이는 세계 최초의 장애인 단체라고 평가한다. 명통시는 국가의 지원을 받아 나라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공적단체였다.
장애인이 직업을 갖고 먹고살기도 어렵지 않았다. 조선 후기 실학자 최한기의 인사 행정 이론서인 ‘인정’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장님이라도 듣는 데엔 쓸(사용할) 수 있고, 귀머거리라도 보는 데엔 쓸 수 있으며, 벙어리라도 말할 필요가 없는 일엔 쓸 수 있고, 어리석은 자라도 한 가지 전문 분야에는 쓸 수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주로 점을 치거나 독경, 악기 연주, 그물뜨기, 대장장이 등의 일을 했다. 장애인만을 위한 관직도 있었다. 시각장애인 악공에겐 장악원의 관현맹인, 시각장애인 점술가에겐 관상감의 명과학 자리를 주었다. 능력을 인정받으면 고위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 청각장애인 이덕수는 이조판서와 대제학에 올랐고, 간질장애인 권균은 우의정, 지체장애인 심희수는 영부사에 올랐다.
그러나 여성 장애인은 직업을 갖거나 결혼하기 어려워 고달픈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조선 후기 한 여성 중증 장애인이 마흔이 넘도록 혼인하지 못한 것을 한탄한 가사 ‘노처녀가’에서 그 절절한 심경을 엿볼 수 있다. ‘어느덧 늙어지고 측은한 신세 되었구나/시집이 어떠한지 서방 맛이 어떠한지/생각하면 싱숭생숭 쓴지 단지 내 몰라라./내 비록 병신이나 남과 같이 못할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