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 72개 특성화고의 신입생 모집 결과 49개교에서 지원자의 중학교 내신 성적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전교 1, 2등을 하던 학생도 많았다. 이들은 “다른 학생도 용기를 내서 특성화고에 지원하려면 특성화고에 대한 편견이 없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성보중 3학년 박수빈 양(15)은 특성화고 원서접수 첫날인 21일 서울여상에 원서를 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하지만 주변은 난리가 났다. 내신 0.6%로 전교 1, 2등을 다투는 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1학년 때는 전국 청소년 백일장에서 은상, 2학년 때는 호국 문예 백일장에서 최우수상을 타기도 했다. 교사들은 “인문계로 가라”고 권유하면서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느냐”고 물었다.
▼ 중학교 전교 1, 2등 수재들 “빨리 실무 배워 취업 꿈 이룰래요” ▼
박 양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는 “요즘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어려워 청년실업자가 늘어나는데, 굳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가기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었다”며 “특성화고에 가서 공부를 덜 하려는 게 아니라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자격증도 따고 가능성을 찾아 미래를 먼저 준비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전농중에서 내신 상위 0.6%로 전교 2등을 하는 신동민 군(15)도 선린인터넷고 테크노경영과에 지원했다. 선생님과 부모님은 “후회할 거다. 일반고에 진학해 대학 가서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했다. 신 군의 생각은 간단했다. “컴퓨터 전산·회계에 관심이 있다. 일반고에 가면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데 빨리 내가 원하는 실무를 배우고 싶다.”
이예진 양(15)은 아버지처럼 새마을금고에 취업하고 싶어 해성국제컨벤션고에 원서를 냈다. 서울 전일중에서는 전교 3등을 했다. 주변에서 반대하자 잠시 불안해지고 고민도 됐다. 하지만 이 양은 “은행원이 목표라 특성화고에서 전문지식을 배워서 그걸 바탕으로 취업과 진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대기업에 특성화고 출신의 채용을 독려하는 등 ‘선취업, 후진학’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7월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어떤 일도 할 수 있게 일자리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특성화고 지원자들은 고졸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지적한다. 박 양은 “어른들이 꼭 좋은 대학에 가야 성공한다는 생각을 버려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양도 “굳이 공부에 흥미가 없다면 인문계보다 특성화고에 가서 취업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주변에는 특성화고에 가고 싶지만 부모님 반대로 못 가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박 양의 어머니 임은경 씨(42)도 “아이가 특성화고에 지원한다고 하니 주위에서 ‘부족한 게 뭐가 있다고 거길 보내냐’고들 했다. 그런 인식이 변해야 우리 사회도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