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에 대해서도 의사들은 운동 효과와 부상 예방 등에 대한 지식을 자랑한다. 하지만 마라톤 풀코스를 수십 번 완주한 사람을 보면 주눅이 드는 것을 자주 본다.
올가을 차일피일 미루던 마라톤 10km 대회에 나가 보기로 했다. ‘의사가 장거리 달리기를 해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환자들에게 달리기 운동을 권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마라톤에 도전한 이유였다.
드디어 가을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가을비가 내리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세워 놓은 목표대로 뛰었다. 떨어지는 빗방울로 온몸을 샤워하면서 달리는데 다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어린 시절 비가 올 때 개구쟁이들이 일부러 비를 맞으면서 뛰어 노는 광경이 떠올랐다. 차가운 가을 공기는 금방 훈훈한 입김이 되어 빠져나갔다. 달릴수록 심장은 점점 더 평온해졌다. ‘마라톤 중독’ 현상까지 직접 체험했다.
마라톤은 올해 나의 몸을 위해 한 일 중 제일 잘한 일이라 믿는다. 10km를 처음으로 완주했을 때의 성취감이 생각보다 컸기 때문이다.
10km를 뛰고 난 며칠 뒤 중년 부부가 진료실을 찾아왔다. 대한민국 중년의 대략 반수는 비만이고 3명 중 1명은 콜레스테롤이 높다. 이 부부의 콜레스테롤도 작년보다 더 높아져 있었다.
두 분께 콜레스테롤을 낮추기 위해 건강한 음식과 규칙적인 운동을 권했다. 남편은 “운동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스트레스가 많고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부인은 운동을 싫어했다. 그 부인은 “음식으로 콜레스테롤을 조절하겠다”며 운동을 하지 않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운동에 대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으면 이런 질문을 했을까.
권영훈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 병원 건강의학센터 교수
동기 유발을 위해 여성분에게 적절한 목표를 제시했다. “처음에는 매일 30분씩 산책을 하시면 어떨까요. 그러다가 익숙해지면 속보로 걸어보세요. 아마 몸이 상쾌해지실 겁니다.”
두 분은 식이요법과 규칙적인 운동을 꼭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진료실을 나갔다. 나의 경험이 환자에게 먹혀들어간 것이다. 나는 요즘 동료 의사를 계속 설득하고 있다. “우리 이론에만 묻혀 있지 말고 내년 봄에 10km 마라톤 완주해 볼까.”
권영훈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 병원 건강의학센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