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
첫눈은 소리없이 내리며 갈등 봉합
사람들은 왜 첫눈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왜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것일까. 그것은 사랑하는 마음을 말없이 전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의 언어를 저 순백한 천상의 언어로 대신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아마 그럴 것이다. 이 땅에 첫눈이 오는 까닭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첫눈을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은 공평하다. 불공정하지 않고 편애하지 않는다. 똑같이 축복을 내린다. 첫눈은 하늘이 내리는 축복의 공평한 손길이다. 첫눈은 죽은 자의 무덤 위에도 산 자의 아파트 위에도 내린다. 고속도로에도 굽은 산길에도 내린다. 선암사 해우소 위에도, 송광사 산수유나무의 붉은 열매 위에도, 명동성당의 뾰족한 종탑 위에도 내린다. 대기업 총수의 어깨 위에도, 가난한 아버지의 등허리 위에도 내린다.
첫눈은 어느 한 곳 어느 한 사람에게만 치우치지 않고 분배의 법칙을 지킨다. 아무리 불평등하기를 원해도 반드시 평등의 질서를 지킨다. 인간의 삶이 종국에 가서는 결국 공평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지금은 내 삶이 남보다 못한 것 같고 때론 우월한 것 같지만 첫눈이 내리면 다 마찬가지다. 그것은 마치 죽음이 삶의 가치를 공평하게 만들어버리는 것과 같다.
첫눈은 이 공평성을 바탕으로 갈등과 균열을 봉합해 준다. 한마디 말도 없이 모든 싸움과 분노와 상처를 한순간에 고요히 잠재워버린다. 인간의 모든 죄악을 순결과 침묵의 힘으로 덮어버린다. 첫눈은 바로 인간을 거듭나게 하는 용서의 손길이다. 첫눈 내리는 눈길을 걸어가는 인간의 뒷모습을 보라. 그 눈길 위에 찍히는 인간의 발자국을 보라. 그 얼마나 겸손하고 경건하고 아름다운가. 첫눈 내리는 길을 걸으며 마음속에 미움과 증오가 들끓고 사리사욕의 탐욕이 가득한 이는 없다. 만일 누군가가 그렇다면 그는 폭설에 나뭇가지가 뚝 부러지는 겨울 산의 침엽수와 같다.
침엽수는 겨울이 되어도 잎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에 폭설이 내리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만다. 그러나 활엽수는 그렇지 않다. 겨울을 맞이하면서 나뭇가지마다 잎을 다 떨어뜨려 쌓인 눈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낸다.
요즘은 눈이 와도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와! 눈이다” 하고 탄성을 지르던 예전과 달리 교통대란부터 먼저 생각한다. 눈사람도 만들지 않는다. 우리 아파트엔 아이들을 둔 젊은 부부가 많이 사는데도 엄마와 아이가 눈사람을 함께 만드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눈싸움을 하며 웃음을 터뜨리는 젊은 부부의 모습 또한 보지 못했다. 눈이 내리면 세상이 따뜻해지는데도 그런 사람이 없음으로써 그만큼 세상이 삭막하고 싸늘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내 가슴속에는 어릴 때 내가 만든 눈사람이 녹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다. 내가 힘들 때마다 그 눈사람이 내게 친구처럼 말을 걸고 위로해준다.
어려운 사람 가슴속에 더많이 내렸으면
첫눈이 오지 않는 겨울은 불행하다. 그러나 첫눈이 오지 않는 겨울은 없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올해는 첫눈이 좀 푸짐하게 내렸으면 좋겠다. 첫눈이 함박눈으로 내려 우리 시대의 모든 갈등의 지붕을 새하얗게 덮어 모두 하나 되게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갈 곳 없는 노숙인의 추운 발길 위에,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줍는 노인의 구부정한 가슴속에 더 많이 내렸으면 좋겠다.
정호승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