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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미자, 빛보다 빠르다고? 지하 1478m서 1300km 세계최장 실험

입력 | 2011-12-02 03:00:00

■ 美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에 가보니




 페르미연구소가 구상 중인 ‘프로젝트 X’ 사업 개념도 실선은 기존 시설을 점선은 ‘프로젝트 X’가 시작되면 새롭게 들어설 시설을 의미 

‘덜컹, 윙∼.’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손잡이를 잡아당겨 수동으로 문을 열었다. ‘촤르륵.’ 문이 닫히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이 엘리베이터는 지하 약 100m까지 ‘논스톱’으로 운행한다. 1분쯤 지나자 목적지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커다란 땅굴이 나타났다. 몇 발짝 내딛자 육각형의 거대한 중성미자 검출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 테바트론 멈춘 뒤, 활기 잃은 페르미연구소

지난달 17일 미국 시카고 인근 버테이비아에 있는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를 찾았다. 약 10km²에 이르는 광활한 연구소 캠퍼스에서 땅 위로 솟은 건물이라곤 16층짜리 본관뿐이다. 나머지 건물은 기껏해야 2, 3층인 데다 드문드문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연구소의 핵심 시설은 모두 지하에 있다. 연구소의 상징이자 미국 입자물리학의 자부심이었던 입자가속기 ‘테바트론’은 지하 7.6m에 건설했다. 페르미연구소는 올해 9월 30일 이 테바트론의 가동을 영원히 중단했다. 28년 만이다.

연구소의 심장과도 같던 테바트론이 멈추면서 연구소도 활기를 잃은 모습이다. 테바트론의 주요 검출기인 ‘CDF’(Collider Detector at Fermilab)와 ‘디제로’(D0) 시설은 철수 작업이 한창이었다. 검출기에 잡힌 입자의 신호를 확인하느라 24시간 연구진이 진을 치고 있어야 하는 제어실(컨트롤룸)은 썰렁했다. 디제로팀에서 실리콘그룹팀장을 맡고 있는 윤성우 연구원은 “실험이 한창일 때는 허리에 ‘삐삐’(호출기)를 2개나 차고 다녀야 할 만큼 바빴다”며 “지금은 막바지 데이터를 받고 있으며 이 작업이 끝나면 검출기 일부는 교육용으로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중성미자 실험 내세워 재도약 시도

하지만 페르미연구소의 다른 한쪽에선 ‘테바트론의 시대’를 이어갈 다음 먹거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연구소는 테바트론의 ‘후계자’로 중성미자를 낙점하고 2007년부터 ‘프로젝트 X’라는 사업을 구상해 왔다. 프로젝트 X는 새로운 선형가속기를 건설해 10개 실험을 동시에 진행하는 사업이다. 중성미자 실험이 프로젝트 X의 ‘주연’이다.

중성미자 실험에 관해서라면 페르미연구소는 ‘베테랑’이다. 2005년부터 지하 100m 깊이에서 ‘미노스(MINOS)’라는 중성미자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 실험은 페르미연구소에서 출발한 중성미자가 미네소타 주 수단 광산까지 약 735km를 지하 약 710m 깊이에서 날아가도록 설계됐다.

미노스 실험은 최근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는 실험 결과를 내놓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실험과 거리나 깊이가 비슷하다. 현재로서는 미노스 실험이 ‘중성미자 미스터리’를 검증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꼽힌다.

페르미연구소는 2005년 지하 100m 깊이에 중성미자 검출기를 설치하고 735km 떨어진 지점까지 중성미자를 날려 보내 중성미자의 성질을 알아보는 ‘미노스’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 제공

프로젝트 X가 계획 중인 중성미자 실험은 미노스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프로젝트 X는 중성미자를 페르미연구소에서 한때 금광이었던 사우스다코타 주 홈스테이크 광산의 샌퍼드 지하실험실까지 약 1300km를 지하 1478m 깊이에서 날아가게 하는 ‘LBNE(Long-Baseline Neutrino Experiment) 실험’을 구상하고 있다. 세계 최장거리 실험이다. 샌퍼드 지하실험실에 설치될 중성미자 검출기는 16층 높이 건물로 세계 최대 규모이기도 하다.

미국 로체스터대 소속으로 페르미연구소에서 중성미자 실험에 참여하는 박재원 연구원은 “중성미자 실험은 입자물리 연구뿐만 아니라 우주의 비밀을 캐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면서 “LBNE 실험이 시작되면 페르미연구소는 ‘우주연구의 프런티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버테이비아=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설계에 힘 보태겠다” ▼

‘프로젝트 X’ 총괄지휘 김영기 페르미硏부소장

‘경천애인(敬天愛人).’

지난달 17일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 김영기 부소장(49·사진)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정면에 걸린 액자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영어책으로 둘러싸인 그의 방에서 붓으로 써 내려간 한문 넉 자는 이색적이었다. 김 부소장은 “아버지가 써 주신 것”이라면서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뜻인데, 지금 내 삶이 꼭 그렇다”고 말했다. 페르미연구소에서 김 부소장은 ‘소통의 달인’으로 불린다. 그는 “자연 법칙을 연구하는 과학자이니 하늘(자연)을 공경하는 게 맞고, 부소장이란 자리가 여러 사람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밖에 없으니 사람을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면서 웃었다.

김 부소장은 올해 한국 과학계에서 화제의 인물로 거론됐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대형 실험시설인 한국형 중이온가속기(KoRIA)의 기초설계 자문을 맡아 처음 이름을 알릴 때만 해도 그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우수한 한국인 물리학자’였다.

그런데 그는 올해 5월 본보의 KoRIA의 ‘표절’ 의혹 제기 이후 국제자문위원장을 맡아 KoRIA 기초설계 전반을 검토하면서 과학계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페르미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다는 점도 부각됐다. 물리학자, 가속기 전문가, 그리고 행정 능력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김 부소장은 기초과학연구원장 후보로도 거론됐다. 실제로 그는 원장 최종 후보 6인에 들며 최근 오세정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이 초대 원장으로 결정될 때까지도 유력한 후보였다.

김 부소장은 “개인적인 이유로 고사했지만 멀리서나마 기초과학연구원과 KoRIA를 도와주고 싶다”면서 “여러 가지로 지원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며 소회를 밝혔다. 이어 KoRIA 사업단장의 조건에 대해 “KoRIA를 제작하는 데 국제협력이 많이 필요한 만큼 이 방면에 경험이 많은 사람이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소장은 페르미연구소의 차세대 가속기 사업인 ‘프로젝트 X’를 총괄 지휘하고 있다. 그는 “프로젝트 X는 아르곤, 브룩헤이븐, 로런스버클리 등 미국 내 가속기연구소 대부분과 협업하고 있다”면서 “이런 식으로 페르미연구소가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원이나 KoRIA와 협업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버테이비아=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 중성미자 ::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 물체와 반응하지 않고 그대로 통과해버려 ‘유령입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만큼 검출하기도 어려워 아직 물리적 성질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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