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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기물명(器物銘)을 찾아서]송년 시즌에 살펴본 주계-주기명(酒器銘)

입력 | 2011-12-03 03:00:00

세종은 술로 인한 禍 끝이 없다 하고, 이태백은 석잔이면 道 통한다 하고…




풍성하게 트레머리를 얹어 올린 여인이 부뚜막에서 국자로 술을 떠 올린다. 그녀를 둘러싼 사내들의 낯빛도 발그스름하다. 신윤복의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에 수록된 ‘주사거배(酒肆擧盃·1805년)’의 일부분이다. ‘주국(酒國)’에 살고 싶었던 신윤복에게 술은 독이었을까, 아니면 덕이었을까. 동아일보DB

조선에 금주령(禁酒令)이 엄했던 1766년 5월 23일. 중국의 베이징(北京) 쯔진청(紫禁城) 근처 건정동(乾淨)의 객점에서 한중학술사의 기념비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조선 선비인 홍대용(洪大容)과 김재행(金在行)이 중국 문인 엄성(嚴誠) 육비(陸飛) 등과 의형제를 맺으면서 이후 한중 문인 사이의 교류는 한층 깊고 넓은 물결을 이루게 됐다.

이날 정담의 물꼬를 튼 것은 술이었다. 금주령 때문에 ‘주(酒)’자를 넣어 시문을 지을 수 없다고 김재행이 엄살을 부리자 엄성은 “논어에도 술을 말한 곳이 여러 군데인데 그렇다면 공자님도 그른 것이냐”고 맞받았다. 그리고 일행은 고픈 술을 못 마시며 사는 것은 죽는 것만 못하다는 김재행을 ‘산 채로 죽은 술귀신(酒鬼)’이라 놀렸다.

콩 튀듯 술에 관한 해학이 펼쳐지던 중에 육비가 물었다. “술이 없으면 조선의 연회에서는 무엇으로 즐기십니까?” 본시 술을 잘 못하는 홍대용이었지만 이렇게 답했다. “연회에서 술을 들지 못하니 분위기가 죽고 낙세(樂世)의 맛이 적답니다.”

○ 상정(觴政), 술잔 나라의 정치

이국의 객점에서 나눈 술 이야기는 ‘술의 나라’가 우주의 어떤 좌표에 놓이는지를 시사한다. 이 나라는 국경으로는 잴 수 없는 곳에 있으며 풍류와 낙세를 구하는 무리들이 환(歡·기쁨)과 광(狂·미치거나 사나움)을 즐기는 곳이다. 그렇지만 술의 나라인 주국(酒國)에는 그들대로의 규율이 있었던 듯하다. 술잔 소리만 들어도 기뻐 날뛰었다는 허균(許筠)은 상정(觴政), 곧 술잔 나라의 정치를 흠모했다.

허균의 술잔 나라에 가면, 술꾼들이 뽑은 어떤 어른이 정사를 펼친다. 술 분위기가 약하면 그는 근무 태만의 냉관(冷官)이 되고 지나치면 가혹한 정치를 휘두른 열관(熱官)이 되고 만다. 그렇기에 녹사(錄事)라는 관리 하나를 거느리는데, 이 사람은 재치가 있거나 음률에 밝거나 그도 아니라면 주량이 남보다 커야 한다.

술이 7분(分) 이상 차오르면 따르는 대로 모두 술잔 밑으로 흘러 내려가는 ‘계영배(戒盈杯)’. 이천시립박물관 제공

술꾼들도 지킬 것이 있다. 술잔을 따지지 말고, 술맛으로 시비 걸지 말고, 시를 지을 줄 알아야 하고, 취하더라도 술을 엎질러서는 안 된다. 눈빛이 난폭한 기운을 띠는 광화(狂花), 몇 잔에 눈꺼풀이 풀리는 병엽(病葉), 행실과 언사가 저속한 해마(害馬)는 이 나라에서 축출된다.

○ 德과 毒의 각축, 술 나라에서 벌어진 전투

“공경·대부·신선·방사(方士·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들로부터 머슴·목동·사이(四夷·사방의 오랑캐)·해외인에 이르기까지 국처사(麴處士)의 향기로움을 맛본 자들은 모두 그를 흠모했다. 성대한 모임이 있을 때마다 순(醇·성인 국은 누룩을, 이름인 순은 진국인 술을 뜻함)이 오지 아니하면 모두 다 서글퍼하며 국처사가 없으니 즐겁지 않다고 했다.”(임춘·‘국순전(麴醇傳)’)

“술의 화가 어찌 곡식을 축내고 재물을 소비하는 것뿐이겠는가! 안으로는 마음을 어지럽히고 밖으로는 바른 모습을 잃게 하여 혹 부모의 봉양을 폐하게 하기도 하고 혹 남녀의 분별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크게는 나라를 잃고 작게는 본성을 해치게 하니, 강상(綱常·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을 어지럽히고 풍속을 무너뜨리는 것을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다.”(세종대왕·‘주계(酒戒)’)

역사상 온갖 논쟁이 오고갔지만 술에 관한 논쟁만 할까. 세종대왕을 비롯한 제왕들은 대체로 술의 독을 경계했다. 중국의 요임금은 딸인 의적(儀狄)이 술을 만들어 바치자 천하의 지극한 맛이라 칭찬하면서도 후대에 나라를 망칠 것도 이것이라 말했다 한다. 조선의 숙종 임금은 “한 번 술을 권하는데 백번 절을 하는 것은 술의 재앙의 무서움을 알리고자 함이었다(주배명·酒杯銘)”고 했다.

학자들도 대체로 술의 폐해를 공격했다. 19세기의 이남규(李南珪)는 이황(李滉)의 주계(酒戒)를 베껴 아들에게 주면서 “창자를 썩히고 본성을 미혹시키고 몸을 망치고 나라를 뒤엎는다. 내가 그 독을 맛보았는데 너 또한 그럴 것이냐”라고 하였다. 박지원은 후배 유득공에게 “술병유(酉)에 졸(卒·죽음)을 합하면 취할 취(醉) 자가 되고, 생(生·삶)을 붙이면 깰 성(醒)자가 된다”며 술을 조심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애주가들의 항변도 그칠 줄 몰랐다. 이규보는 ‘국선생전(麴先生傳)’에서 “우울하던 임금도 성(聖·청주)이 들어와 뵈면 비로소 크게 웃었다”고 적었다. 이태백은 만고의 시름을 잊으려 술잔을 들었고 “석 잔이면 도에 통하고 한 말이면 자연에 합한다(三杯通大道 一斗合自然)”며 극찬했다. 또 박지원 유득공과 함께 놀았던 박제가는 차고 있던 칼을 끌러 술을 사준 백동수를 호쾌한 남아라 칭하며 기렸다. 애주가들은 여전히 지상에는 없는 주국(酒國)의 주민이기도 했던 것이다.

○ 술의 나라 하늘에 떠 있는 별

술잔, 주전자, 술동이 등의 주기(酒器)에 다짐을 적어둔 글이 주기명(酒器銘)이다. 독이 되었다가 덕이 되었다가 하며 변화가 무쌍한 것이 술인지라 술 나라에는 유독 주기명이 많다.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주국은 자칫 탕아들이 들끓는 난장판이 될 터이다. 이 때문에 주당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하는 하늘의 별자리 역할을 했던 것이 주기명이기도 하다.

이규보는 술동이에 이렇게 적었다. “네가 품은 것을 옮겨, 사람들 배 속으로 들인다. 넌 가득 차면 덜어서 넘치지 않는데, 사람들은 가득 찬 줄 모르고 쉬 고꾸라진다(移爾所蓄 納人之腹 汝盈而能損故不溢 人滿而不省故易, 준명·樽銘).” 비틀비틀 고꾸라지는 술꾼은 술의 길을 이미 잃은 취한(醉漢)이다.

정약용도 술잔에 이렇게 다짐했다. “하루의 절개는 잔에 달려 있고, 백년의 절개는 뜻에 달려 있다. 잔은 넘치면 흐르나, 뜻은 거칠면 취한다(一日之節在器 百年之節在志 器濫則出 志荒則醉, 고명·銘).” 인생이라는 빈 잔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뜻과 의지를 채워 삶이 충만할 수 있기를 바란 것이 정약용이 바람이었다.

“술맛이 왜 단 줄 알아?” 6년 전 학과 수련회에서 4학년 학생이 친구들에게 던졌던 물음이다. 쫑긋 귀를 세운 친구들에게 왈, “그건 인생이 쓰기 때문이야.” 미래가 걱정되어 자다 깨곤 한다는 그 목소리가 아직도 들린다. 송년 모임이 무척 많을 12월, 사람들의 술맛이 이렇게 달지는 않기를 바란다.

김동준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djk2146@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