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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하태원]김영완 비자금

입력 | 2011-12-02 20:00:00


김대중(DJ) 정부 때 ‘현대 비자금 및 대북송금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영완 씨가 최근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고 출국했다. 2003년 8월 미국으로 출국한 뒤 8년 4개월 동안 도피생활을 한 김 씨는 기소중지자다.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그는 현대 비자금의 ‘관리책’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구성된 특별검사팀은 사건의 핵심 인물인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 돌연 투신자살하고 김 씨가 도피하는 바람에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미국과 멕시코 등을 떠돌며 오랜 도피생활을 하던 김 씨는 가끔 입국설이 떠돌다가 잠잠해지곤 했다. 그에게 검찰의 귀국 압박도 만만찮았지만 국내 재산관리의 불편도 컸을 것이다. 그는 입국해 조사를 받고 어떤 식으로든 정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귀국을 앞두고는 변호사를 통해 검찰과 모종의 ‘딜(거래)’을 시도했을 개연성도 높다.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200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 전 회장과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에게서 선거자금 200억 원을 받은 혐의는 법원에서 유죄로 인정됐다. 권 고문은 이와 관련해 징역 5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양도성예금증서(CD) 150억 원을 받아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박지원 전 문화부 장관에게 건넨 혐의는 대법원 무죄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해외에서 진행된 김 씨의 진술이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압수한 120억 원은 있는데 주인이 누군지 모르는 해괴한 상황이 발생했다. 더 큰 의혹은 현대상선 미주본부를 통해 스위스 계좌로 송금된 3000만 달러의 행방이다. 세간에는 송금 시기가 2000년 초였다는 점을 들어 그해 6월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자금이란 해석이 많았다.

▷사건 관련자들은 8년여 동안 숨어있던 사람이 왜 갑자기 들어왔느냐며 ‘정치적 의도’를 의심한다. 민주당 당권에 도전하고 있는 박 전 장관 측에서는 “귀국 배경이 석연치 않다. 유력 야당 당권후보 죽이기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김 씨가 새로운 증언을 내놓더라도 대법원 확정판결이 바뀔 수는 없겠지만 적지 않게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김 씨는 도피하기 전까지 박 전 장관과 막역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 비자금 사건은 법적으로 종결됐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의혹이 많다. 검찰은 명예를 걸고 김영완 비자금의 진상을 밝혀야 할 것이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