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멕시코 등을 떠돌며 오랜 도피생활을 하던 김 씨는 가끔 입국설이 떠돌다가 잠잠해지곤 했다. 그에게 검찰의 귀국 압박도 만만찮았지만 국내 재산관리의 불편도 컸을 것이다. 그는 입국해 조사를 받고 어떤 식으로든 정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귀국을 앞두고는 변호사를 통해 검찰과 모종의 ‘딜(거래)’을 시도했을 개연성도 높다.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200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 전 회장과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에게서 선거자금 200억 원을 받은 혐의는 법원에서 유죄로 인정됐다. 권 고문은 이와 관련해 징역 5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양도성예금증서(CD) 150억 원을 받아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박지원 전 문화부 장관에게 건넨 혐의는 대법원 무죄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해외에서 진행된 김 씨의 진술이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압수한 120억 원은 있는데 주인이 누군지 모르는 해괴한 상황이 발생했다. 더 큰 의혹은 현대상선 미주본부를 통해 스위스 계좌로 송금된 3000만 달러의 행방이다. 세간에는 송금 시기가 2000년 초였다는 점을 들어 그해 6월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자금이란 해석이 많았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