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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스님의 딸… 한국 비구니 역사 새로 써

입력 | 2011-12-03 03:00:00

묘엄스님 어제 입적




1961년 동학사 강원 졸업식에 참석한 청담 스님(왼쪽)과 묘엄 스님(가운데 줄 오른쪽). 두 스님이 함께 있는 사진으로는 거의 유일하다. 불교신문 제공

“이제 그대는 사미니가 됐으니 법명은 묘할 묘(妙)자, 장엄할 엄(嚴)자, 묘엄이라 할 것이다.”

1945년 열네살이던 인순은 묘엄 스님이 됐다. 나중에 조계종 제6, 7대 종정이 되는 성철 스님이 사미니(비구니가 되기 전의 예비 스님)계를 주는 계사였다. 인순은 대를 이어달라는 노모의 간청에 못 이긴 청담 스님의 하룻밤 파계로 태어난 딸이다.

총무원장과 제2대 종정을 지낸 청담 스님의 딸이자 성철 스님의 유일한 비구니 제자로 한국 불교 비구니사(史)의 산증인인 묘엄 스님이 2일 오전 9시 5분 경기 수원시 봉녕사에서 입적했다. 법랍 67년, 세수 80세.

1931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묘엄 스님의 출가는 청담, 성철 스님과의 기막힌 인연이 계기가 됐다. 인순은 1944년경 일본군 위안부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어머니의 편지를 품고 경북 문경시 대승사로 청담 스님을 찾아갔다. 이곳에서 청담 스님과 함께 수행하던 성철 스님은 도반의 딸이 불가와 인연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니하고 나하고 말로 주고받기 시합하자. 내가 이기면 니가 중이 되고, 니가 이기면 중 안 되는 걸로 하자”고 권유했다. 이에 인순은 “스님이 아시는 것, 그걸 다 나한테 가르쳐 주신다면 중이 되겠다”고 대답했다. 결국 인순은 청담 스님의 법문에 영향을 받아 출가한 월혜 스님과 사제지연을 맺었다.

묘엄 스님의 생애는 이 인연이 시작이 되어 각고의 공부와 수행으로 비구니사를 새로 쓰는 삶이었다. 비구니로서는 드물게 1947년부터 청담 성철 향곡 자운 스님이 주도한 봉암사 결사에 참여했다. 당시 7, 8명의 비구니가 봉암사 뒤 백련암에서 수행했다.

불교 계율의 중흥조 자운 스님으로부터 ‘범망경’ ‘비구니계율’ 등을 배웠고 경전 해석에서 최고로 꼽히던 운허 스님을 만나 7년여 동안 공부한 뒤 경전을 가르치는 자격인 ‘전강(傳講)’을 받았다. 정식으로 인가받아 강맥을 이은 비구니는 처음이었다. 1959년 비구니 전문 강원인 동학사에서 최초의 비구니 강사로 본격적으로 교육에 나선다. 1971년부터 봉녕사를 대표적인 비구니 도량으로 육성했고 1999년 국내 첫 비구니 율원인 금강율원을 열어 800여 명의 제자를 키웠다. 2007년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종단 사상 처음으로 비구니로서는 최고 지위인 명사(明師) 법계를 받은 데 이어 2009년 비구니 전계화상(傳戒和尙)으로 위촉됐다.

스님은 “마음공부는 상대적인 부처님을 뵙고 절대적인 나 자신을 찾는 것이다”라는 임종 유훈을 남겼다. 장례는 전국비구니회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봉녕사. 6일 오전 11시 같은 장소에서 영결식과 다비식이 이어진다. 031-256-4127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