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루시 관동대 미디어문학과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
그날 밤 강릉시청 앞마당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벌였다. 여기저기 모닥불을 피워 놓고 막걸리에 ‘메밀적’이 질펀한데 저마다 들고 나온 징 장구 꽹과리 소리가 쩌렁쩌렁 하늘을 울렸다. 밤공기는 싸늘하지만 마음속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술에 취하고 천년 단오에 취한 사람들은 쇳소리를 뚫을 듯 신이 나서 춤을 추었다. 보릿대춤도 추고 허튼춤도 추고 막춤도 추었다. 춤이랄 것은 없어도 나 역시 발바닥이 얼얼해지도록 함께 뛰었다. 그냥 신이 났다. 신이 나서 저절로 발이 춤추던 그날 밤의 기억은 지금 떠올려도 행복하다. 하긴 강릉단오제는 신명으로 다 함께 노는 게 핵심인 축제가 아닌가. 30년 가까이 단오제를 공부했는데 어쩌면 나는 그날 처음으로 단오와 만난 것 같다. 적어도 단오의 신명을 내 몸으로 체험한 것은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바로 그날 밤이었다.
강릉단오제 인정받던 날의 환희
유네스코가 문화의 다양성을 보호하고 현대 문명에 밀려 사라지는 소중한 유산을 지켜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무형문화유산 목록을 등재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부터다. 우리나라는 격년으로 걸작을 엄선할 때 2001년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2003년 판소리, 2005년 강릉단오제를 등재했고 대표목록으로 바뀌어 등재 기준이 완화된 이후에는 강강술래,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영산재, 남사당놀이, 처용무, 가곡, 대목장, 매사냥을 목록에 올렸다. 이번에 3개가 더 등재됐으니 우리는 일본, 중국과 함께 무형문화 강국의 자리를 지키게 됐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얼마나 자신의 문화유산에 대해 알고 있고 삶의 일부로 즐기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유네스코는 등재 조건으로 살아있는 문화여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하지만 14종목 가운데 자신 있게 ‘내 삶 속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종목이 몇 개나 될까. 당장 이번에 등재된 줄타기나 택견, 한산모시짜기가 살아있는 유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두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줄타기는 영화 ‘왕의 남자’ 덕분에 새롭게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 줄타기는 단순한 기예가 아니라 놀이를 통해 민중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의사소통의 장이었다. 그 전통을 이은 영화에서 천한 광대 장생은 높은 줄 위에 올라앉아 최고의 권력자 연산을 비판했고 이 장면에 관객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그뿐, 여전히 줄타기는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전통연희에 불과하다. 택견은 전통무예라고 하지만 전국체육대회 종목에도 들어 있지 않고, 몇몇 고수에 의해 명맥을 잇고 있다. 모시는 여름에 시원하고 보기도 좋지만 워낙 비싸고 손질이 쉽지 않아서 서민들의 삶과 멀어진 지 오래다.
전통 지키려면 문화의 주인 돼야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처럼 유네스코에 목을 매는가. 현대는 문화전쟁의 시대라고 하는데 전통문화를 동원해 국가경쟁력을 과시하려는 술수는 아닌가. 이번에 중국의 쿵후가 유네스코에 등재되지 못한 것에 대해 택견이 쿵후를 이겼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우리도 내심 할리우드가 ‘쿵푸팬더’ 대신 ‘택견호랑이’를 만들어주기 바라는 것은 아닐까.
황루시 관동대 미디어문학과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