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
성철 스님이 참선 중인 스님들을 지도하고 있다. 1981년 성철 스님이 저서 ‘선문정로’를 통해 돈오점수론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시작된 이른바 ‘돈점논쟁’은 불교계 최대 논쟁의 하나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제공
이른바 ‘돈점논쟁’은 성철 스님이 속한 해인사와 지눌 스님이 말년을 보낸 송광사의 대립으로 번졌고 불교계를 넘어 학자들까지 가세했다.
말을 조금 보태면 성철 스님은 돈오의 기준으로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오매일여(寤寐一如)를 제시했다. 동정일여는 일상생활에서 변함없이 화두참구가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잠들어 꿈을 꾸면 화두는 사라진다. 꿈속에서도 한결같은 것이 몽중일여다. 마지막으로 깊은 잠에 들어도 깨어 있을 때처럼 수행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오매일여다. 스님은 오매일여를 통과하지 못하면 돈오가 아니고, ‘깨달은 뒤에도 닦아야 하는 것은 깨달은 것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몹쓸 나무가 뜰 안에 돋아났으니 베어버리지 않을 수 없다”며 해인총림 스님들에게 지눌 스님의 돈오점수 수행법을 경계하도록 했다.
봉암사 결사에 참여했던 월산 스님은 생전 이런 말을 남겼다.
“아무려면 어떤가. 누가 내게 와서 어떤 게 옳으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런 거 모른다고 할 거야. 다들 부질없는 짓이다.” 실제 월산 스님의 생애를 토대로 고은 시인이 쓴 스님 비문에는 “돈오돈수고 돈오점수고, 둘 다 동해 바다에 빠뜨려라”라고 적혀 있다.
2000년 초반에 만난 숭산 스님은 돈점논쟁이 화제에 오르자 과거 성철 스님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일부를 소개했다. 숭산 스님은 “오직 수행할 뿐이다. 돈오돈수도 서른 방망이(서른 번 방망이를 맞아야 한다는 뜻), 돈오점수도 서른 방망이라고 썼다”고 말했다.
당대를 대표했던 학승(學僧) 탄허 스님도 불교계가 돈오돈수로 치닫는 분위기에 아쉬움과 염려를 나타냈다.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는 우선 여기저기서 깨달았다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내놓지 말고 제대로 수행하라는 경책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 논쟁은 불교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한때 종권 다툼과 잿밥 싸움으로 끝없이 추락하던 불교계가 선의 본질을 둘러싼 철학적인 논쟁을 벌인 것이다.
그렇지만 아쉬움이 더 크다. 당시 향곡, 서옹 스님 등이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를 지지하면서 돈점논쟁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채 중심이 돈오돈수 쪽으로 쏠렸기 때문이다.
중국 선종(禪宗) 사서의 하나인 ‘전등록’의 육조 혜능(六祖 慧能·638∼713)과 제자 남악 회양(南岳 懷讓·677∼744) 선사의 대화에도 ‘깨달음을 얻은 뒤에 닦음도 있고 증(證)함도 있다’고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깨달음을 위해서는 ‘살불살조(殺佛殺祖)’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선불교의 전통이라지만 심도 깊은 논쟁 없이 지눌 스님까지 쉽게 ‘죽이는’ 것은 맞지 않다. 더구나 종단은 지눌 스님을 조계종의 종지를 밝히고 널리 알린 중천조(重闡祖)로 삼고 있다.
‘선문정로’ 발표 이후 20년이 흘렀다. 이제야말로 과거의 돈점논쟁을 냉정하게 짚어보고 다시 논의할 때다.
정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25>회에서 송월주 스님은 세계일화(世界一花)의 신념으로 국제 포교의 선구자가 됐던 숭산 스님을 회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