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족의 문자는 2000자 정도 됩니다. 그러나 지금은 잘 쓰지 않죠.”
중국 윈난(雲南) 성 쿤밍(昆明) 시 도심에서 동남쪽으로 120km 떨어진 시린(石林)이족자치현. 이곳 한 마을의 서기는 지난달 25일 마을을 찾은 한국 기자들에게 이족문화를 소개하는 마을박물관을 안내하며 담담하게 설명했다. 이곳 사람들은 옷차림이 중국 현대인들과 다르지 않고 중국어도 유창하게 구사하기 때문에 자신이 이족 사람이라고 소개하지 않는 한 외국인의 눈으로 어느 민족에 속하는지 알아차리기는 힘들다.
한(漢)족을 포함해 56개의 민족이 있는 중국에서도 쿤밍은 소수민족이 많기로 유명하다. 모두 25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역격차 해소를 위한 서부 대개발을 진행하는 한편 소수민족 우대정책을 통해 소수민족과 한족 간의 빈부격차를 줄이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마을 입구 광장의 마을박물관에는 이족의 문화와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사진과 물건들이 전시돼 있었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식습관, 결혼풍습, 장례문화를 가진 이들은 한때 뚜렷한 독자적 문화를 보유했던 민족이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상형문자처럼 보이는 이족의 문자다. 중국 내 소수민족들은 대부분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고, 그중 21개 민족은 고유의 문자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문자는 주로 소수 남성들의 교육을 통해서만 전승되고, 실제 생활에서 중국어 사용 빈도가 늘어 소수민족 언어들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의 취직이 쉽도록 취업에 민족 쿼터를 두는 한편 농촌에 있는 소수민족 마을에 학교 등 주요 기반 시설을 지어주는 등 여러 우대 정책을 펼치고 있다. 소수민족과 한족이 결혼해 아이를 낳았을 때는 자녀가 18세가 됐을 때 스스로 민족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정책적 배려 속에서도 이들은 독자적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중국 사회 내의 ‘소수’에 머물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래된 역사서 속에서 중국과 대결하거나 교류했던 수많은 민족이 오늘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이처럼 겨우 자취만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쿤밍 시의 작은 마을에서, 자랑스러운 문자인 한글을 사용하며 세계 4대 강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세계적 위상을 높이고 있는 한국이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