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연수를 온 지 5개월이 지났습니다. 낯설던 도로환경이나 운전습관도 이젠 익숙해져서 미국의 자동차문화를 꼼꼼히 들여다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도로에 다니는 자동차의 브랜드나 생산연도 및 관리상태, 도로의 포장 수준, 운전 스타일, 교통시설물, 자동차의 이용행태 등 자동차문화에는 한 국가의 모든 모습이 함축돼 있다고 봐도 됩니다. 세계에서 ‘자동차화’가 가장 먼저 실현된 미국. 그들의 자동차문화에 대해 틈틈이 연재를 하겠습니다.
미국에 도착해 처음 운전대를 잡았을 때의 느낌은 ‘무질서’였습니다. “선진국인데 왜 이래”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도로의 포장상태가 좋지 않았으며 도로 표지판 등 시설물도 낡고 찌그러진 것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중앙선을 넘어 좌회전을 하는 차가 많고, 신호등도 부족해 적응이 되지 않더군요. 신호대기에서 녹색등으로 바뀐 뒤 조금만 머뭇거려도 여지없이 날아오는 경적세례는 서울 이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둘씩 그들의 법칙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교통질서는 ‘배려와 양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급반전됐습니다. 차차 풀어나가겠지만 우선 ‘정지’ 표지판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미국의 이면도로에서 운전하면 엄청난 수의 정지 표지판을 만나게 되는데 주변에 차가 안 보이더라도 무조건 정지해야 합니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미국의 교통질서도 무너집니다.
좌회전 금지 표시만 없으면 대부분의 사거리뿐만 아니라 중앙선을 넘어서도 비보호 좌회전이 허용되는 것은 차를 돌릴 수 있는 신호등이 적어서이지만, 운전자끼리 양보와 배려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지 않으면 사고의 위험 때문에 허용하기 힘든 규정입니다. 앞에 가던 차가 교차로가 아닌 곳에서 좌회전 방향지시등을 넣고 정지해서 뒤에 차가 밀려도 경적을 울리거나 화내는 법이 거의 없고 오히려 반대편에서 오던 차가 속도를 줄여 좌회전을 하라고 손짓을 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꼭 법칙을 잘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어딜 가나 미꾸라지는 있기 마련이니까요. 다만 그 수가 선진국일수록 적다는 것이죠.
―미국 노스헤이븐에서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