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영화 욕심 ‘비주류’감독들주류들을 갖고 놀 순 없는가
영화 ‘오직 그대만’.
미국 할리우드가 영국의 폴 그린그래스라는 감독을 캐스팅해 ‘본 아이덴티티’의 후속편인 ‘본 슈프리머시’(2004년)를 맡긴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린그래스는 시위를 벌이다 영국 공수부대에 유혈진압당한 북아일랜드 시민들의 사연을 다큐멘터리 찍듯 옮긴 영화 ‘블러디 선데이’(2002년)를 연출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감독. 그는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뛰어다니는 촬영기법을 ‘본’ 시리즈에 과감히 대입해 기존 첩보영화의 문법을 단숨에 해체하는 혁신을 이뤘다.
‘스파이더맨’으로 세계 최고의 상업영화 감독 반열에 오른 샘 레이미도 다르지 않다. 당초 레이미는 B급 호러물의 단골 기술인 과장된 심리표현과 엽기적 카메라워크를 자랑하던 소수 감독. ‘스파이더맨’이라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연출을 맡게 된 그는 자신의 비주류 감성을 대작 영화에 인장처럼 새기는 방식을 통해 블록버스터의 문법을 뒤틀어버렸다. 거미인간의 어둡고 모순되는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방식을 통해 그는 ‘더 크고 더 세게’만을 외치던 할리우드 히어로무비의 한계를 조롱하고 뛰어넘어 버렸다.
저예산 영화를 줄곧 만들어온 ‘비주류’로서의 송일곤은 모험적이면서도 상상력이 풍부했다. ‘거미숲’(2004년)을 통해서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혼란의 리얼리티를 보여주며 주인공의 내면을 강렬하게 들춰내려 하는 한편, ‘마법사들’(2005년)에서는 1시간 36분의 러닝타임을 단 한 번의 컷도 나누지 않고 한 호흡으로 찍어내는 ‘원 테이크 원 컷’ 방식을 통해 영화적 형식을 실험했다.
그러니 국내 최고 청춘스타인 소지섭 한효주가 ‘불멸의 사랑’을 나누는 청춘멜로물을 그가 각본까지 쓰고 연출한다고 했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를 두고 궁금해 미칠 지경이 되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가장 ‘주류적’인 장르와 남녀 배우를 가져다 그가 어떤 ‘비주류적’ 유전자를 뒤섞어 요리할 것인가, 그리고 사람들을 얼마나 당혹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자극할 것인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가 내놓은 결과물은, 나쁘게 표현하자면 뮤직 비디오에 가까웠다. 남자와 여자는 우연의 일치로 만나고, 안타깝게 헤어진 뒤, 또 우연의 일치로 만난다. 은퇴한 복서가 눈이 멀어가는 여인을 위해 목숨을 건 격투기에 나선다는 내용이라니…. 게다가 한효주는 “내가 그랬지. 눈 뜨면 아저씨 얼굴만 보겠다고” 같은, 순정만화 속 대사를 남발하면서 카메라 선전 같은 표정과 정서로 일관하는 것이다.
물론 송일곤으로선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주류영화로 성공해 보고픈 욕망이 없었을 리 없다. “이 작품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은 이런 생각에서 나온 발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통은 자신의 예술세계를 덮어두고 대중의 눈높이와 취향에 맞을 법한 영화를 만드는 데서 출발하지는 않는다. 굴지의 투자배급사인 쇼박스가 그를 왜 픽업했겠는가 말이다. 비주류는 주류로 변신할 때가 아니라 주류를 갖고 놀고 극복하고 확장시킬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