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동 국제부 기자
‘라와게데의 학살’로 무고한 양민 431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의 시신은 폭우에 휩쓸려갔고 강물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마을엔 한동안 시신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학살 다음 날 한 여성은 남편과 12세, 15세 난 두 아들의 시신을 한꺼번에 땅에 묻어야 했다.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이 사건은 제국주의 네덜란드의 만행을 상징하는 가슴 아픈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인도네시아는 1949년 독립을 쟁취했지만 유족들의 한은 쉽게 풀릴 수 없었다. 1969년 네덜란드 정부는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시절 자행한 네덜란드군의 위법 행위를 조사해 발표했다. 그러나 많은 사실을 축소, 왜곡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네덜란드는 이후에도 ‘깊은 유감’을 표하는 수준에 그쳤을 뿐 손해배상은 끝까지 거부했다.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이유에서였다.
비록 64년 만의 뒤늦은 사과지만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네덜란드의 태도는 진실을 영원히 은폐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반면 한국을 강점하며 저지른 숱한 죄악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는 과연 언제 이뤄질지 여전히 기약할 수 없다.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가 다음 주면 1000회째다. 일본은 네덜란드에서 역사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인권을 존중하는 양심국가를 표방하려면.
유재동 국제부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