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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유호열]中압력에 굴복한 日과 탈북자 인권

입력 | 2011-12-10 03:00:00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중국 주재 일본 공관은 탈북자를 더는 보호할 수 없게 됐다. 일본 언론은 일본 정부가 올해 초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 중국 정부의 요구를 전폭 수용하기로 하고 이를 문서로 중국 당국에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중국은 일본 정부에 탈북자 처리에서 중국법을 존중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일본이 ‘탈북자를 공관 밖에서 공관 안으로 데려오지 않는다’고 서약함으로써 중국 측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이 같은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가 재중 탈북자 문제를 극도로 악화시키고 한일관계나 한중관계에 근본적 변화를 초래하지는 않겠지만 인권 차원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임은 분명하다. 우선 중국의 탈북자 처리에 관한 태도와 정책은 분명히 후퇴한 것이고 실망스러운 조치다. 외국 공관에 진입한 탈북자의 제3국으로의 이송을 묵인하던 관례를 깨고 2009년 이후 북한을 의식해 탈북자를 적극 색출하고 강제 송환에 협조하는 것은 초강대국인 중국의 위상과 책임에 걸맞지 않은 소극적이고 자국 중심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미국과 더불어, 나아가 미국을 넘어 새로운 국제질서와 가치를 창출하기를 내심 희망하고 있는 중국은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대한 보다 분명하고 합리적인 정책과 태도를 갖춰야 한다. 탈북자를 단순 월경자로 취급하는 중국 측 주장은 그들의 탈북 동기나 북한으로 강제 송환될 경우의 상황을 종합할 때 설득력이 없다.

일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때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 강국으로 아시아 최고의 문명선진국을 자처하던 일본은 미국의 뒤를 이어 2006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며 북한인권과 탈북자 보호에 적극적이었다. 물론 북송 교포와 북송 일본인 처의 본국 송환을 주요 대상으로 했지만 보편적인 탈북자 문제를 놓고 중국과 각을 세워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았다. 매년 유엔 인권이사회 총회에서 유럽연합과 미국 등 서구 선진국과 함께 북한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주도하기도 했다.

일본 공관을 찾아 들어간 탈북자 중 상당수는 1950∼70년대 북송된 교포와 그 가족이다. 북송사업을 방조하거나 협조했던 일본은 탈북자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일본 국적을 가진 탈북자는 앞으로도 보호하겠지만 일본 국적이 아니라고 해서 탈북자를 일본 공관이 포기한다면 법적 도의적 책임을 포기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더구나 동아시아의 새로운 공동체, 한일 간 공조체제를 강조하는 일본이 일방적으로 중국의 압력에 굴복하는 것은 결코 긍정적일 수 없다.

우리 정부는 지난 햇볕정책 시기와 비교할 때 재외공관을 통한 탈북자 보호와 국내 이송에 적극적이고 협조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도 수많은 탈북자를 안전하게 그들의 의사에 따라 보호하는 데 미흡한 점이 있다. 중국과의 조용한 외교, 한일 간 공조에도 개선하고 보완할 점이 많다.

공관에 따라, 공관원에 따라 탈북자 보호와 지원에 차이가 있는 것은 우리의 탈북자 외교정책의 허점을 보여준다. 재외공관의 탈북자 보호와 이송에 관한 체계적이고 표준화된 매뉴얼을 만들어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준비와 훈련이 시급하다. 재외공관, 특히 중국을 비롯해 탈북자를 보호해야 하는 지역에는 전담 공관원을 배치해 주재국과 탈북자 문제를 효율성 있게 처리해야 한다. 단순히 인도적 차원의 문제를 넘어 자국민 보호와 주권 수호의 문제로 간주해 좀 더 격상된 조치들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일본의 굴욕적인 태도 변화를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 민간단체들은 문명사회의 잣대로서 지켜보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