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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미디어]‘호주 워킹홀리데이’브로커들 사실상 인신매매… 포주-마약 조직 먹잇감 전락

입력 | 2011-12-10 03:00:00

한국 여성 원정 성매매 2000명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각종 불법과 탈법의 온상으로 전락했다. 호주 시드니 시내와 성매매 업소 광고 합성사진. 이철 채널A 기자 kino27@donga.com

‘총체적 난국.’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제도의 현 상황에 대한 김석민 워킹홀리데이 서포팅센터 소장(47)의 냉혹한 평가다. 김 소장은 “정부의 무관심 속에 이 제도가 각종 불법과 탈법의 온상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기자가 호주 현지에서 취재한 워킹홀리데이 비자의 잘못된 운영 실태는 심각했다.

○ 윤락 여성들의 비상구

한국과 호주가 워킹홀리데이 비자협정을 체결한 지 올해로 16년째. 그동안 많은 한국 젊은이가 이 비자를 이용해 호주를 찾았다. 첫해에 10여 명에 불과했던 워킹홀리데이 비자취득자(워홀러)들이 요즘엔 매년 3만∼4만 명에 달할 정도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이 비자는 최근 국내 윤락여성들이 사법 당국의 단속을 피해 호주로 진출하는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

올 10월 초, 주시드니 한국총영사관은 정부에 호주 내 한국 윤락여성 실태를 보고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호주 전체 성매매 종사자는 2만3000명(2010년 10월, 마케팅조사기관 IBIS World 조사). 이 중 외국인은 약 25%(2008년 성노동자연합 조사 결과)였고, 외국인의 16.9%(2010∼2011년 호주 이민시민권부 조사 결과)가 한국인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호주 성매매 업소에 종사하는 한국 윤락여성을 1000여 명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이것은 호주 정부에 공식으로 등록한 성매매 업소만을 대상으로 한 추정치일 뿐이다. 마사지업소와 감금, 인신매매 등을 자행하는 불법 업소까지 합하면 그 수는 2000명을 크게 웃돌 것이라는 게 현지에서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는 한 교민의 증언이다.

“(불법 업소까지 포함하면) 시드니에만 200개? 기본적으로 한 가게에 10명이 있고 가게가 10개라면 벌써 100명이 되는 거고. 그냥 대충만 계산해도 추산치보다 1000명 더 나오지 않을까요?”

○ 브로커로 나선 부동산 업자도

호주 연방경찰의 통계에 따르면 2004년 이후 현재까지 연방경찰이 보호하는 인신매매 피해여성은 모두 184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한국 여성은 모두 31명으로, 전체 피해여성의 16.9%였다. 공교롭게도 호주 이민시민권부의 조사 결과와 정확히 일치한다.
▼ 호주 원정 性매매 여성, 한국 워홀러 비자 사들여 체류 연장 ▼

호주 시드니 뉴타운 지역 한 성매매 업소. 이곳에서 일하는 윤락여성 대부분이 한국 여성이다. 크로스미디어팀이 잠입 취재했다(위).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를 찾은 한국 젊은이들은 대부분 세컨드 비자(기간 1년 연장) 취득을 위해 농장에서 일한다(아래). 윤락여성들은 이 비자를 불법으로 구입해 체류 기간을 늘린다. 채널A 이철 기자 kino27@donga.com·카페 ‘베이스캠프’ 운영자 제공

호주 정부는 성매매를 허용했지만 인신매매에 대한 단속은 강력하다. 업소 주인과 여성 간에 채무채권이 있는 것도 인신매매의 한 형태로 분류돼 단속 대상이 된다.

한국 윤락여성들은 대부분 브로커를 통해 호주 성매매 업소를 소개받는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윤락여성들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소개비와 항공료, 거주비용 등의 명목으로 수백만 원의 빚을 진다. 인신매매나 다름없는 행태다.

최근에는 서울 강남 일부 부동산 업자도 호주 성매매 알선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밀린 전세나 월세를 대신 내주고, 이를 제때 갚지 못하면 호주 성매매 업소로 연결해 주는 방식이다. 이용배 한인청소년권익보호공동체 부회장은 “(여성들이) 부동산에서 꿔 준 보증금을 갚아 나가는 정도는 자신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사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러면 (호주) 업주들이 아가씨에게 걸려 있는 금액을 다 주고 사 간다”고 전했다.

○ 윤락여성 마약 중독 심각

2년 전 호주 연방경찰은 마약 불법거래 혐의로 시드니의 한 윤락업소를 단속한 적이 있다. 단속 결과 업소 사장과 10여 명의 윤락여성이 모두 마약에 중독된 상태였다. 이들 모두 한국인이었다. 마약은 폭력조직과 깊이 연계돼 있다. 호주 성매매 업계는 대부분 중국과 베트남계 폭력조직이 장악하고 있는데, 마약 역시 주로 이들을 통해 거래되고 있다. 한국 업소와 여성들은 판매망을 확보하려는 이들 폭력조직의 먹잇감으로 노출돼 있다는 게 현지 성매매 업소 관계자의 지적이다.

○ 비자 불법 거래로 체류기간 연장

워킹홀리데이 비자 기간은 기본 1년이다. 호주 정부에서 지정한 농장에서 3개월 이상 일하면 1년을 연장할 수 있다. 이것이 ‘세컨드 비자’다. 문제는 한국 워홀러들 사이에서 이 비자의 불법 거래가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컨드 비자 신청에 필요한 농장 ABN(호주사업자등록번호)을 사고파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돈을 받고 취업을 대신해준 뒤 비자를 받아 넘겨주는 방법도 동원되고 있다. 호주 정부가 비자 발급 심사 과정에서 불법 거래를 단속하기 위해 은행계좌 거래명세서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통과하기 위한 수법인 것이다.

호주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한국 윤락여성들 대부분이 이 같은 불법 거래를 통해 세컨드 비자를 취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농장 정보를 제공해 주는 인터넷 카페 ‘베이스캠프’ 운영자 문삼희 씨는 “그냥 ABN만 주는 건 약 800호주달러(약 95만 원), 농장을 대신 뛰어주는 경우는 1000호주달러 선에서 거래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농장에서 일하는 워홀러들과 윤락여성들 사이에 불법 거래라인이 형성된 셈이다.

○ 정부의 뒤늦은 대책

상황이 이처럼 심각한데도 정부는 그동안 호주 교민 관계자들과 대책회의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아그네스 심 호주 한인여성회 부회장은 “(워킹홀리데이 비자와 관련해) 각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단체들을 모아서 한 달에 한 번이고, 두 달에 한 번이고 머리를 맞대고 뭔가를 풀어나가야 하는데 그런 자리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는 관계부처 대책 회의를 거쳐 불법 윤락여성 수사를 위해 검사 1명을 호주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주시드니 총영사관의 한 관계자는 “호주에서는 윤락여성 관리는 지방정부, 인신매매 등 인권 문제는 연방경찰과 주 정부, 보건위생 문제는 주 정부 등 사안에 따라 담당 기관이 다른 만큼 우리 정부도 종합적인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영사관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봐야 할지 몰라”
김석민 워킹홀리데이 서포팅센터 소장

김석민 소장(사진)은 올해로 11년째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온 젊은이들을 돕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서포팅센터는 2004년 호주 정부의 승인을 받은 비정부기구(NGO)다.

―한국 워홀러들의 현주소는….

“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젊은 피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무런 불만도 하지 않는, 얼마를 주든, 일하다 다쳐도 아무런 불만도 없는 그런 일회용 대일밴드 같은 존재일 뿐이다.”

―문제가 많은데 왜 해결되지 않는 것인가.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지금 영사관이나 한인단체, 우리 같은 서포팅센터도 마찬가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잘하든 못하든, 워킹홀리데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2년이고 3년이고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밀어줘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조달청을 통해서 1년에 한 번씩, 경험도 없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밀어주기식으로 교육을 하고 있다. 제대로 된 기관에서 교육을 해서 아이들을 내보내야 망가진 일본 워킹(홀리데이 비자제도)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다.”

엄상현 채널A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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