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논설실장
20대 대졸 실업자 B 씨는 부모에게서 “요즘 아이들은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서 나약한 것이 탈이야”라는 설교를 지겹도록 들으며 자랐다. B 씨는 “부모님 세대는 그래도 좋은 대학 가면 좋은 직장이 생겼고 생활이 안정됐지만 우리는 끝이 안 보이는 세대”라고 불평했다. “고교 때는 대학 입시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스펙 쌓기와 학점 경쟁이 벌어집니다. 언제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지만 경쟁을 통과해도 성공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좋은 직장은 한정돼 있습니다. 일자리가 없으니 미래를 설계할 수도 없지요.”
B 씨의 부모 같은 50, 60대는 지금 젊은이들처럼 풍요 속에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우리 역사상 가장 혜택받은 세대다. 그들은 한국 경제가 요즘의 아프리카 케냐 수준이던 1950, 60년대에 태어났다. 그러나 지금은 삶의 질을 보여주는 지표인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비슷하게 따라잡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 부지런히 뛰어다닌 사람들은 먹고살 만큼 재산을 불릴 수 있었고 대학을 나오면 직장을 골라잡았다.
‘요즘 아이들’은 고교 졸업생의 80%가 대학을 가고, 대학을 나와 봐야 일자리가 없는 암울한 현실이 기다린다. 길고 긴 경쟁의 터널을 통과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반값 등록금 시위의 근본 원인은 비싼 등록금을 4년간 꼬박꼬박 내도 좋은 직장을 구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의대생들은 등록금이 더 비싸지만 반값 등록금 시위를 하지 않는 것을 보더라도 “문제는 등록금이 아니라 일자리”라고 교수들은 말한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반값 등록금 이전에 일자리를 말해야 한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젊은 대학생들에게 “어떤 사회가 되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하면 ‘일할 기회를 달라’ ‘일한 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고 싶다’로 답이 압축된다고 밝혔다. 젊은 세대라서 복지 욕구는 크지 않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분배의 균등보다는 기회의 균등을 원한다.
그렇다면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를 맞아 어디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가. 글로벌 경쟁에 내몰린 대기업을 향해 코스트 따지지 말고 일자리만 늘리라고 주문할 수는 없다. 결국 일자리는 중소기업과 자동화가 어려운 서비스업에서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지상파TV의 독과점을 깨고 새로 출범한 4개 종합편성 채널은 외주제작사와 연관산업 후방효과를 합쳐 수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종편이 자리를 잡아 한류 콘텐츠가 풍성해지면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일자리가 더 늘어날 것이다. 방송미디어시장뿐 아니라 영리병원, 관광, 한류 업종 등 서비스산업의 규제를 혁파하고 제조업 수준의 혜택을 부여해 산업구조를 바꿔가야 한다.
안철수 박원순 씨도 대안 있어야
안철수 박원순 씨가 대학생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결해줄 대안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청춘콘서트를 하면서 젊은이들과 소통한 안 씨나 시민운동을 하면서 사회의 바닥을 훑은 박 씨에게 대학생들은 동질감을 느끼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을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동국대 주창범 교수는 SNS 이용자들이 ‘약한 유대감(loose solidarity)’에 의존하기 때문에 공감하지 않을 때는 언제든지 상실감을 느끼지 않고 ‘관계 끊기’를 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그래서인지 인기 정치인의 유통기한이 무척 짧아졌다. 안철수 박원순 씨도 현실성 있는 미래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젊은이들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등을 돌린 것처럼 그들에게 다시 실망하고 분노할 것이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