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N점퍼 열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부 학생 사이에서 조금 독특한 현상이 발견된다. 어떤 색상, 얼마짜리의 N 점퍼를 입는지가 개인의 취향이나 경제 형편 이외에 다른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
경기도의 한 중2 A 양(13)은 최근 빨간 색상의 N 점퍼를 구입했다가 일주일 만에 중고품 판매 사이트에 내놓았다. 학교에 입고 갔다가 ‘일짱’으로 불리는 학생에게 ‘네가 뭔데 빨간색 N점퍼를 입느냐’ ‘튀고 싶어 환장했냐’ 등 욕설을 들었기 때문이다.
A 양의 말에 따르면 그가 다니는 학교에서 소위 좀 논다는 학생들은 빨강, 노랑, 보라처럼 튀는 색상의 N점퍼를 선호한다. 평범한 학생들은 입더라도 까만색이나 남색 같은 어두운 계열을 주로 입는다. A 양은 “날라리 애들이 모여 있으면 휘황찬란하다. 튀는 걸 좋아해서 그런 것 같다”면서 “평범한 학생들은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에 눈에 확 띄는 색은 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고기능성의 초고가 제품을 착용함으로써 ‘신분’이 상승한 경우도 있다. 서울의 한 고1 남학생 B 군(16). 내성적인 성격 때문인지 학기 초부터 그는 따돌림을 당했다. ‘빵셔틀’(매점에 간식을 사러가는 심부름을 수행하는 것)에도 시달렸다. 그의 학교생활이 완전히 달라진 건 두 달 전 N점퍼를 입으면서부터다.
B 군은 ‘N점퍼를 입으면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한 달 동안 아버지를 졸라 점퍼를 구입했다. 아버지가 사 주신 점퍼는 시가로 100만 원이 넘고 구하기도 어려워 전교에 입는 학생들이 몇 없는 제품. 막상 구입하고서도 B 군은 학교에 이걸 입고 갈지 말지 수십 번 고민했다. 이 정도 튀는 제품을 B 군이 입는다는 건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처음 N점퍼를 입고 간 날. B 군은 학급 친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네가 이런 걸 입고 올 줄 미처 몰랐다” “용감하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그를 괴롭히던 학생들까지 와서 “어디서 샀냐” “방수 잘되냐”고 물었다.
이를 계기로 서서히 학급 친구들과 대화를 하게 된 B 군. 그는 이제 친한 친구들이 생겼다. 빵셔틀에서도 벗어났다. 자신감이 생기고 성격도 밝아졌다. 그에게 N점퍼는 슈퍼맨 망토이자 구세주다. 이틀에 한 번꼴로 드라이클리닝을 맡긴다. 용돈의 대부분이 세탁비로 나간다. 소중하게 입다가 다른 비싼 신제품이 나오면 또 구입할 생각이다. 다시 외톨이로 돌아갈까 불안한 마음에서다.
도대체 이 점퍼가 뭐길래. A 양과 B 군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 인상 깊다. “공부를 아주 잘하는 애들 중에는 N점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애들도 있어요. (N점퍼를) 안 입어도 무시당하지 않으니까요.”
옷으로라도 주목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중고생들의 마음을 무조건 탓할 수만 있을까. 하지만 특정 브랜드의 점퍼를 고집하기 전에 제 마음 속에 ‘자신감’이라고 하는 따스한 옷부터 차려입었으면 좋겠다.
장재원 기자 jj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