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여 년 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추진할 때 이를 반대하는 세력과 거대 국영기업들의 반발은 격렬했다. WTO 가입 결정을 주도한 장쩌민(江澤民) 당시 주석과 주룽지(朱鎔基) 총리에게 당 내부에서 비난이 집중됐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개방의 성과를 자축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그때의 결단을 이끌었던 장 주석과 주 총리의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평가다.
그때 주 총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갈 테니 기다려 달라. 직접 얘기하자.”
당시 상무부 부부장이던 웨이젠궈(魏建國)는 “내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주 총리는 그때 한 해의 가장 중요한 경제 관련 모임인 중앙경제공작회의를 주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고 회고했다.
주 총리는 바셰프스키 대표에게 최후의 제안을 내놓았다. “어제 최고지도부가 모여 우리가 양보할 수 있는 한도에 합의했다. 나는 이제 더 양보할 게 없다.”
그는 또 “만약 우리가 이 역사적인 기회를 잃는다면 앞으로 더는 기회가 없다”며 미국을 설득했다. 양측이 마주한 건 한 시간 남짓. 결국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영화산업 개방 문제를 마무리 짓는 데 성공했다. 이후 2년 뒤 중국은 WTO 가입국이 됐다.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당시 장 주석이 주 총리의 막판 협상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주 총리가 미국과의 담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중국은 없을지도 모른다. 이와 함께 정치적 견해가 다를지언정 한 번 합의된 결과를 묵묵히 따라준 중국 지도부의 지원 또한 주요 2개국(G2) 중국을 있게 한 동인(動因)이었다.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