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뽕 등 중독에 제조-밀매… 민간 이어 정권보루까지 침투최근 전군상대 범죄근절 교육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이 만든 마약범죄 관련 강연자료. 북한군은 최근 군관(장교) 및 군 가족, 군수 공업 부문 종업원을 대상으로 이 자료로 교육하고 있다. 동아일보 입수
동아일보가 12일 입수한 ‘마약범죄를 무자비하게 짓뭉개 버리자’는 제목의 6쪽 분량 자료는 “최근 사회적으로 마약을 제조하고 밀매, 사용하는 범죄행위들이 나타나고 있다. 군대 내 일부 군관과 종업원, 군 가족들도 마약과 관련한 범죄행위를 하고 있음이 나타나고 있다”며 인민군 내 마약범죄 실태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 자료는 인민군 총정치국이 작성했다.
총정치국은 최근까지 모든 장교와 병사, 군 가족들을 상대로 교육을 실시했다. 대북 소식통은 “현재 북한에는 의약품이 태부족해 민간에는 상비약 진통제 대용으로 마약 복용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인민군은 이를 알면서도 묵과해 왔다”며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인민군 내 마약범죄가 군이 묵인하는 수준을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에 나타난 군내 마약범죄 사례들은 충격적이다. 어느 한 부대의 후방 ‘일군’(간부라는 뜻으로 후방 일군은 식량 피복 등을 담당하는 군수담당관)의 경우 3년 전부터 처와 공모해 마약 제조에 쓰이는 여러 가지 기초물질들을 구입해 제조, 밀매했다고 한다.
▼ 마약 권하는 北…“개도 얼음 물고 다닐 판” ▼
<얼음-히로뽕을 뜻하는 北은어>
또 다른 부대 산하 공장의 ‘일군’은 ‘스스로 마약을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시도 때도 없이 공장 내 여성 종업원들을 불러다 함께 마약을 사용하게 하고는 ‘불량자적 행위(퇴폐행위)를 하였다’고도 밝히고 있다.
군뿐 아니라 민간의 마약범죄 사례도 공개돼 있다. 평남 평성시의 한 주민은 최근 몇 년 동안 막대한 양의 마약주사액을 만들어 병 치료를 원하는 주민들에게 돈을 받고 몰래 팔았다. 또 자료는 ‘평북 곽산군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여러 사람과 함께 마약을 하면서 남조선 영화를 비롯한 불순 녹화물을 보다 적발됐다’고 밝혔다. 양강도의 한 주민은 마약을 살 돈을 얻으려고 전화선 같은 국가통신선을 절단해 밀매하다 적발됐으며 남포에서도 한 마약중독자가 수면제로 사람을 재워놓고 물건을 훔쳤다고도 적혀 있다.
자료는 곳곳에서 마약범죄의 확산을 우려하고 심각성을 경고했다. “집단생활과 사회생활 전반에 해악을 미치며 나라를 망치는 결과까지 가져올 수 있다”며 “옛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나라들에서도 마약범죄가 성행하여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병들고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파괴했다. 이를 바탕으로 반혁명적이고 반사회주의적인 불순 적대세력들이 머리를 쳐들고 준동하기 시작했다”고 적고 있다. 이어 “중국에서는 마약범죄에 대해 극형(사형)까지 적용하고 있으며 마약을 밀매하다 체포된 외국인(필리핀, 일본인)까지 사형에 처했다”면서 “자수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이번 자료를 통해 사상 교양을 중시해 온 북한이 군 장병들에게 내부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마약 차단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지만 군의 마약범죄는 쉽게 막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북한 주민들 사이에 마약이 만연되어 있는 상태이고 북한군이 기본적으로 ‘민가(民家)’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민가 의존형 군대’라는 결정적 한계가 있다. 식량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군인들은 각자 ‘사택’ 또는 ‘아지트’로 불리는 민가들과 교류하지 않으면 영양실조에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민가에 살고 있는 일반 주민들은 군인들이 훔쳐오거나 군인 부모들이 자식에게 보낸 식량, 돈 등을 보관해주면서 군과 공생한다. 북한 인민군의 고참들 중에는 심지어 부대보다는 아예 민가에 가서 지내는 군인도 많다. 이렇다 보니 군인들도 사회에 만연한 마약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다.
또 군 내부의 만연한 마약범죄는 오랫동안 지속돼 온 ‘선군정치’의 해악이기도 하다. 군인들이 외화벌이, 각 지역 출입허가 등 각종 이권을 과도하게 갖다 보니 현금 대용으로 사용되거나 뇌물용으로 각광받는 마약이 군으로 많이 흘러가게 된 것이다. 북-중 국경경비대원 중에도 탈북을 방조해 준 대가로 돈을 받아 마약을 하는 군인이 적지 않다.
마지막으로 마약을 하던 청소년들이 점점 더 많이 입대한다는 점도 군내에 마약이 만연하는 큰 이유다. 현재 북한에서 대다수 10대 청소년은 마약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많은 학교에선 마약을 못하는 학생들이 오히려 왕따를 당하는 지경이라고 탈북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최근엔 마약 강도 절도 등에 연관된 사회적 문제아들을 군에 보내 사상을 교양 개조하라는 김정은의 지시까지 하달돼 불량청소년들이 대거 군에 입대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북한의 마약 남용은 해가 갈수록 점점 용납하기 힘든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희망이 없는 고단한 삶의 탈출구를 마약에서 찾고 있다. ‘얼음(히로뽕의 은어)이 만병통치약이고 배고픔까지 사라지게 해 준다’는 인식까지 퍼져 있다.
북한에 일반화된 마약은 ‘얼음’ ‘아이스’ ‘뽕’ 등의 은어로 불리는 메스암페타민(히로뽕)과 아편진이다. 이 중 ‘얼음’의 폐해가 가장 심각하다. 얼음은 1990년대 말부터 민간에 본격적으로 제조방법이 퍼지기 시작해 함흥 평성 지역을 중심으로 대량생산 시스템이 구축됐다.
초기에는 중국 등으로 밀매됐지만 과잉 생산되면서 북한 내부에 퍼져나가 이제는 ‘개도 물고 다닐 지경’으로 흔해졌다. 손님이 오면 담배를 꺼내놓던 접대 문화가 이제는 얼음을 권하는 문화로까지 바뀌고 있다는 증언도 많다.
한국에서 10만 원 정도에 거래되는 1회 투약분(0.03g)이 북한에선 한국 돈 기준 600∼800원에 거래된다. 아는 공급처가 있으면 훨씬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다.
특히 구매력이 있는 간부와 상인 계층의 마약 중독이 심각하며 지역적으로는 밀매 통로가 형성된 북-중 국경 일대에 많이 퍼져 있다. 북-중 국경 일대에는 주민의 70∼80%가 얼음 투약 경험이 있다는 증언도 있다. 최근 탈북한 여러 탈북자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아무리 낮게 잡아도 북한 주민의 20∼30%는 얼음을 흡입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