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머슨 4중주단 ★★★★☆
현악 4중주의 모범을 보여준 에머슨 4중주단. 왼쪽부터 첼리스트 데이비드 핑켈,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드러커, 비올리스트 로런스 더튼, 바이올리니스트 필립 세처. 소니뮤직 제공
1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에머슨 4중주단의 공연은 최근 소니뮤직으로 이적해 처음 발매한 모차르트 ‘프러시아 4중주’ 음반 마지막 곡, K590으로 시작됐다. 첼로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는 일어서서 연주했다. 음악의 흐름에 맞춰 움직이는 동작이 자유로워 서로의 교감을 용이하게 했다. 이들은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을 곡에 따라 다르게 가져가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음반과 마찬가지로 유진 드러커가 제1바이올린을 맡았다.
첫 울림은 데이비드 핑켈의 첼로와 로런스 더튼의 비올라가 함께 만드는 풍성한 저음역으로 다가왔다. 드러커와 제2바이올린 필립 세처는 바이올리니스트 오스카 셤스키의 제자다. 이들은 스승처럼 기교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도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지하며 마감을 부드럽게 만드는 연주를 하고 있었다. 이런 바이올린 소리라면 오래 들어도 귀가 피로하지 않다. 아니, 귀의 피로를 풀어준다. 드러커는 큰 음량은 아니지만 뚜렷한 노래를 들려주었다. 2악장의 말미에서 고음역 지판을 짚는 손이 약간 불안했지만 비올라, 첼로와 더불어 세련되면서도 따스한 연주를 들려줬다.
인터미션 후 드보르자크 현악 4중주 13번 Op.106에서도 안정적인 연주를 들려준 세처가 제1바이올린을 맡았다. 미국에서 체코로 돌아온 만년의 드보르자크가 쓴 이 곡은 연륜과 깊이가 남다르다. 메인 프로그램으로 손색이 없었다. 끝없는 꿈길처럼 이어지던 2악장에서 멤버들이 미묘하게 변화시키던 음색의 뉘앙스는 30년 넘게 앙상블의 대화를 나눠온 네 연주가의 관록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체코의 민속 춤곡이 쓰인 3악장과 4악장에서도 보헤미아의 흙냄새보다는 특유의 연마된 따스함 안에서 해석하는 서정성이 느껴졌다.
객석의 반응은 뜨거웠다. 에머슨 4중주단은 여러 차례 커튼콜이 이어지는 가운데 드보르자크 ‘사이프러스’ 중 한 곡과 모차르트가 편곡한 바흐 평균율 중 한 곡 등 두 곡을 앙코르로 들려주었다. 명성답게 에머슨 4중주단의 음색은 밀도가 높고 윤택했다. IBK챔버홀의 좋은 울림도 일조했다. 실내악의 진수를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는 연주공간의 여건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했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