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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박인규]神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

입력 | 2011-12-14 03:00:00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

2009년 여름 국내에서도 톰 행크스 주연의 ‘천사와 악마’라는 영화가 상영됐다. 영화는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와 바티칸시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갈릴레이 이래 로마 가톨릭교회의 탄압을 받던 한 과학자 집단이 반물질 폭탄을 만들어 바티칸을 위협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 톰 행크스(랭든 교수 역)가 이 과정에서 ‘신의 입자’ 이야기를 듣고 흠칫 놀라며 ‘천지창조’에 관련된 입자를 만들고 있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신의 입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힉스 입자’라고 불린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 이야기로 지금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힉스 입자를 발견하면 인간은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썼던 방정식을 알게 된다느니, 그래서 물리학의 끝을 보게 된다느니, 아니면 신의 입자가 애초에 없어서 지금까지의 물리학을 모두 다시 고쳐 써야 한다느니 등의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

전 세계 과학계가 왜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가면서 수년에 걸쳐 이 힉스 입자를 찾고 있을까. 그리고 이 힉스 입자가 과연 무슨 입자이기에 신의 입자라고 불리는 것일까.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으로 돌아간다. 당시는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가 잘 알려져 있었고, 우리 주변의 모든 물질은 모두 80∼90개의 원자로 다 분류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원자는 모두 깨지지 않는 기본 입자라고 여겨졌다.

이때 역사를 바꾸는 한 실험이 벌어진다. 물리학자 러더퍼드는 영국 캐번디시연구소에서 방사선의 일종인 알파 입자를 얇은 금박에 쏘아 금원자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알파 입자들이 100% 금원자 속을 뚫고 지나갈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몇몇의 알파 입자는 예상과 전혀 다르게 뒤로 튕겨 나왔다. 원자 속에 양전기를 띤 딱딱한 원자핵이 존재함을 알리는 최초의 발견이었다. 원자핵의 존재가 알려지고, 원자가 마치 태양계와 같이 원자핵과 그 주변을 도는 전자들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에 1910년대 사람들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게 됐다.

그로부터 채 반세기도 흐르기 전에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떨어졌고, 인간들은 핵발전소를 통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0년 뒤인 현재 비슷한 흥분의 도가니가 신의 입자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다.

힉스 입자의 발견이 왜 그토록 중요할까. 현대물리학의 핵심인 ‘표준모형’이 사실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에 등장하는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와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기본 입자들이 왜 제각기 서로 다른 질량을 갖고 있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물리학계가 내놓은 처방전이 바로 힉스장(場)의 존재다. 입자들이 존재하는 공간인 진공에 융털 카펫과 같은 가상의 힉스장이 펼쳐져 있어, 이 위를 움직이는 입자는 카펫 결의 방향과 입자들의 운동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마찰력을 받게 된다는 것. 그래서 입자들이 힉스장에 의해 서로 다른 질량을 갖는 입자로 나타나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힉스장의 양자화된 모습이 바로 힉스 입자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입자들이 질량을 갖는다는 것은 힉스장이 존재해야만 가능하다는 논리다. 그래서 만약 이 힉스장의 입자적 표현인 힉스 입자가 없다면 현대물리학의 최고 이론이라는 표준모형은 틀렸다는 의미가 된다. 입자들이 왜 질량을 갖는지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반대로 힉스 입자가 발견되면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완전히 새로운 22세기가 만들어질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우리가 원자핵 발견 이후 원자핵의 성질을 정밀히 연구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듯이 말이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