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
1994년 3월 조계사에서 종단 개혁을 요구하는 스님과 중앙승가대생들이 총무원장 의현 스님의 퇴진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동아일보DB
1980년대 들어 종단의 정치권 유착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1987년 총무원장 의현 스님은 모든 개헌 논의를 금지하는, 이른바 4·13 호헌조치를 ‘고뇌에 찬 충정의 구국 의지’라며 지지했다. 6·29 선언에 이어 대통령선거가 다가오자 이번에는 ‘불자 대통령’ 운운하며 노태우 후보를 지원했다. 그러다 1992년 대선에서는 정주영 후보를 밀다가 다시 YS(김영삼 전 대통령) 쪽으로 돌아섰다.
불교계를 대표하는 수장이 선거 때마다 스스로 정치적인 중립성을 훼손하자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그럼에도 스님은 1962년 통합 종단 출범 이후 처음으로 4년의 총무원장 임기를 마친 데 이어 1990년 8월 재임에 성공했다.
1987, 88년 봉은사 사태를 겪은 종단은 1991년 종정 추대를 둘러싸고 다시 양분됐다. 성철 스님의 종정 재추대가 원인이 됐다. 그해 8월 원로회의는 성철 스님 재추대를 결정하지만 월산 스님을 지지하는 세력이 반발하고 나섰다. 월산 스님 쪽은 통도사에서 승려대회를 개최한 뒤 서울 강남에 따로 총무원을 개원했다. 법정 공방 끝에 강남 총무원이 강북에 흡수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종단사에서 또 하나의 오점이었다.
월산 스님은 나의 사형이고, 스님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혜정 스님은 고향 친구이자 둘도 없는 도반이었다. 혜정 스님이 어느 날 찾아와 월산 스님을 지지할 것을 권유했지만 거절했다. 월산 스님 측은 종정중심제를 지지했고, 나는 오래전부터 그 폐해를 지적하며 총무원장 중심제를 고수해왔다. 같은 문중에 인간적 관계까지 감안하면 미안한 일이지만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의 문제였다.
1994년 들어 종단은 다시 난기류에 휩싸였다. 의현 스님이 3선 도전에 나선 가운데 상무대 비리가 터졌다. 종단의 젊은 스님들은 조기현 전국신도회장이 상무대 이전 공사를 맡은 대가로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의현 스님에게 80억 원이 전달됐다며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법난 이후 십수 년 종단을 장악해온 의현 스님은 퇴진 요구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개혁에 대한 종단 내부의 열망은 이제 힘으로 억누를 수 없는 것이었다.
조계사의 1994년은 이전과 달랐다. 과거 종권을 둘러싼 몇몇 스님과 문중을 중심으로 벌어진 갈등이 아니었다. 이들의 요구는 부패한 종단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이었다. 따라서 종권을 나누는 타협이나 미봉책은 해법이 될 수 없었다.
10·27 법난으로 짓밟혔던 조계사의 봄이 14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그것은 권력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임이 곧 드러난다.
정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32>회에서 송월주 스님은 의현 스님의 퇴진에 이어 선거를 통해 총무원장으로 복귀합니다. 1980년 법난 이후 14년 만입니다.